본문 바로가기
간절한 기대 (삶)/책과 삶 <책을 읽고>

<책을 읽고> 김대식,“빅퀘스천” 중에서… ’성숙을 위해 떠나다.‘

by 그 길을 2025. 3. 3.
728x90
반응형

그렇다면 무엇이 인간을 한없이 먼 곳을 그리워하게 하는 것일까?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병은 대부분의 문화에 존재한다. 인간의 뇌에는 ‘결정적 시기’라는 것이 있는데, 이 시기의 뇌는 젖은 찰흙 같아 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자유자재로 주물러지고 변형될 수 있다. 오리는 태어난 지 몇 시간, 고양이는 4주에서 8주, 원숭이는 1년, 인간은 약 10년까지 유지되는 ‘결정적 시기’에 겪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뇌 구조가 완성된다. 그래서 아이슬란드에서 성장한 뇌는 아이슬란드에 최적화된 뇌를, 카르타고에서 자란 뇌는 카르타고에 최적화된 뇌를 가지게 된다.

  고향이란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희망을 만든 원인, 바로 그 자체이다. 그런 곳을 그리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익숙한 고향이 아닌 ‘먼 곳’에 대한 그리움은 다르다. 독일어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하임베Heimweh’와 반대로 먼 곳을 그리워하는 ‘페른베Fernweh’라는 단어가 있다. 알지도 못하고 익숙하지도 않은 그 먼 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까?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은 “인류의 모든 전설과 신화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떠나는 자에게는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유 없이 떠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바로 헤어짐이다. 자신에게 익숙한 세상과 이별한 자에게는 도전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바로 성숙이다. 떠남을 통해 성숙한 자는 다시 익숙한 세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돌아온 자는 더 이상 떠나기 전의 그 사람이 아니다. 그것이 귀향이다. 캠벨은 이렇게 인류의 모든 스토리들이 헤어짐, 성숙, 그리고 귀향으로 이뤄진다고, 이 과정이야말로 인류 공통의 ‘단일신화monomyth’라고 이야기한다. -

(중략)

우리가 떠나는 진정한 이유는 어쩌면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인지 모른다. 깨달음을 얻어 돌아올 수도 있고, 황금과 명예를 얻어 귀향할 수도 있다. 삶과 죽음의 비밀을 이해할 수도 있고, 자기 존재의 비밀을 깨닫고 고향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존재하는 것에는 돌아올 수 없는 하나의 헤어짐이 있다. 죽음이다. 죽음은 ‘그다음’이 없는 끝이다.

- 김대식, <김대식의 빅퀘스천(우리 시대의 31가지 위대한 질문)> 중에서..
——————————————————————————

나는 이제 벌써 열번째 이사 야…
동기 목사가 그동안 나그네 세월을 헤아리듯, 우수의 찬 눈빛으로 말을 시작했다.

나도 사역을 시작하면서 이곳저곳 많이 옮겨다녔다.
얼마전 이곳 안양으로 들어와 전세 계약을 하며 동사무소에 등본을 떼보니, 등본의 기록들이 나도 나그네 인생이라 할만했다.
타의든 자의든 인간은 떠난다. 익숙한 세상과 이별한다는 것, 떠나는 것은 힘든일이다.
떠남을 결단한 자들에게 저자 김대식은 이렇게 위로한다.
“떠나는 자에게는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야하는 이유가 있다. ”
“자신에게 익숙한 세상과 이별한 자에게는 도전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바로 성숙이다.”

나도 어딘가로부터 떠나 이곳에 왔다.
수많은 도전과 시련이라는 떠남을 통해서 나는 지금 이곳에 왔고, 나는 성숙하고 있다.
그 수많은 떠남을 통해서 다 가진거 같으나, 불행한 사람을 보았다.
무엇을 붙들어야 할지 모른채 이리저리 먼지처럼 가벼운 존재들도 보았다.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버려야 할지 알았다. 물론 아직 버려야 할것들이 많다.
나는 떠남을 통해 성장해 왔다.

우리는 반드시 떠나야하는 존재인데, 그것조차 모르고 살다가 떠남을 통해 다시 깨닫게 되었다.
안정적인 한 곳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죽음이라는 것이 있어 언젠간 그곳을 떠나게 되어있다.
떠남은 분명 어려운일이다. 최적화 된 장소와 사람들과의 이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떠날까? 그래 맞다.
성숙하여 돌아오기 위해서이다.
이전의 내가 아니라 더 나은 나로 성숙된 나로 돌아오기 위해서 이다.

무신론자인 김대식에게 떠남은 곧 성숙된 나로 돌아오기 위해서 라고 했지만,
목사인 나는 떠남은 곧 성화된 나로 돌아오기 위해서 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우리는 떠나야 한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떠났듯이
바울이 주예수께 받은 사명을 위해 떠났듯이
그리고 성화된 존재로 천국으로 돌아갔듯이
떠남은 곧 돌아오기 위해서 이다.

참고로 나는 6번째 이사다. ㅎㅎ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