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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든지 죽든지 (신학)/교회사

강인철, 한국 개신교 반공주의의 형성과 재생산을 읽고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4.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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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철, 한국 개신교 반공주의의 형성과 재생산을 읽고 


- 개신교 반공주의 초기 형성기의 몇가지 쟁점들 

 

한국 개신교에서 반공적 태도가 형성되는 시점은 언제일까? 대부분 연구자들은 1920년대로 동의하고 있다. 1920년대는 어떤 시기일까? 만주와 연해주지역에서 선교하던 이들이 해당지역 사회주의자들과 충동을 빚기시작하고 국내에서 초기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반기독교운동이 벌여졌다. 1920년대 YMCA를 중심으로 '기독교 사회주의운동' 선교사들로 부터 자주적인 기독교 건설을 요구하는 움직임등 사회주의적 기독교 비판을 긍정적인 자극으로 수용하거나 기독교 사회주의의 공존을 추구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1932년 9월 예수교연합공의회 제 9회 총회에서 제정 발표된 12개조의 사회신조가 그것이다. 

사회신조는 최저 임금법, 소작법, 사회보험법 제정등 몇가지 사회지침을 허용하고 기독교 사회책임을 강조함으로써 탈 사회적 보수주의 신학노선에 중대한 수정을 가하면서 동시에 "일체의 유물교육, 유물사상 계급적 투쟁 혁명수단에 의한 사회개조와 반동적 탄압에 반대한다는 문구를 전문에 삽입하여 반공적 태도를 명백히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1920~30년대 개신교 전체가 반공주의로 정리된 셈이다. 


한국 개신교의 사회주의는 어떤 과정에서 등장하게 되었을까? 

저자는 한국 천주교와 달리 개신교는 자생성이 발견된다고 하고 있다. 당시 대부분 근본주의자들이었던 외국 선교사들에게 사회주의를 전수받았을 가능성은 아주 적었다. 그런면에서 YMCA와 같은 공간은 국제적 조직망을 통해 사회복음운동을 접할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공간에서 반공주의의 응전을 효과적으로 입장을 정리할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 근대성에 대한 태도 1920~30년대 미국의 근본주의자들은 근대성을 반대하면서 공산주의를 근대성의 일부로 여겨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에는 그러한 반근대적 태도가 보이지 않고 있다. YMCA를 통해 한국 개신교는 근대지향적인 개신교 지식인 그룹일부는 사회주의와 기독교 모두 근대성의 표현내지 통로로 간주하면서 '개신교 신자이면서 동시에 사회주의자인' 정체성을 추구할 가능성 또한 남아 있었다. 

그러므로 1920~30년대 YMCA를 통해 등장한 기독교사회주의 그리고 해방후 소수지만, 남한과 북한에서 좌파적인 개신교 그룹이 등장했던 것은 이런 가능성이 현실화 된 사례로 볼수 있다.  


Q: 관련하여 1901년 정교분리 선언은 기독교사회주의에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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