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제1치리서" (1560)/ 오늘날 치리가 왜 사라졌을까?
이 나라 안에 있는 어떤 신분의 사람이든지, 그가 지배자이든 피지배자이든, 설교자이든 교회 안에 가장 낮은 자이든 모두 죄를 범했을 경우 치리에 순복해야한다. 그리고 교회의 눈과 입은 최대한 한결같아야하고 비난 받아서는 안되기 때문에 목회자들의 삶과 언행은 할수 있는 한 신중해야한다. 이에대해서는 목회자를 도와서 교회의 공적인 일들을 담당할 장로와 집사의 선출에 관해 다루고 난 다음 추후에 다룰 것이다.
-박경수 역, “스코틀랜드 제 1치리서,”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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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교회치리서 - 예스24
스코틀랜드 교회치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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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왜 한국교회와 당회내에 치리다운 치리가 이루어지지 않은가? 심지어는 사라져 버렸는가?
장로교에서 치리는 성례와 더불어 정말 중요한 교회의 표지리다. 그런데 왜.. 치리는 오늘날 그 자취를 감춰버렸을까? 장로교의 뿌리라고 할수 있는 1560년 스코틀랜드 제1치리서에서 짧은 몇 구절들 속에서 그이유를 발견했다.
“모두 죄를 범했을 경우 치리에 순복해야한다.”
“ 교회의 눈과 입은 최대한 한결같아야하고 비난 받아서는 안되기 때문에 목회자들의 삶과 언행은 할수 있는 한 신중해야한다.”
1. "모두 죄를 범했을 경우…."
죄를 범할수 있는 인간 이라는 위치. 이 위치는 인간이기 때문에 죄를 덮어야 한다 라는 당위성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죄인이기 때문에 회개해야한다, 라는 입장을 전해주는 것 뿐이다. 우리는 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기에 회개의 자리는 언제나 열려있으며 교회의 치리에 순복해야할 의무가 있다.
죄를 덮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것을 드러내주고 상처가 나더래도 도려내고 잘라내는 것이 어쩌면 더 큰 사랑일것이다
우리에게 치리가 사라진 이유는 ‘모두 죄를 범했을 경우...’ 라는 가정법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형제 사랑의 부재때문이다.
2. “ 교회의 눈과 입은 최대한 한결같아야하고....."
더불어 치리 기관인 당회와 교회에 권위 때문이다. 세상 법과 교회의 법이 나뉘어져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세상의 법이 교회의 법보다 무거우니 치리는 당연히 세상의 법에 무게를 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법은 회개와 용서와 권면이라는 세상과는 다른 치유책이 있다. 치리가 우리안에 사라진 이유는 회개와 용서와 권면이라는 사랑이 기초된 한결같은 원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교회됨을 추구하는 자신감이 사라졌다. 치리는 사실 교회됨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그자체 이다. 그러나 그것이 상실되어 자신감도 잃고 교회마저 세상법에 무게를 두어 의지하게 되었다.
3. “비난 받아서는 안되기 때문에 목회자들의 삶과 언행은 할수 있는 한 신중해야한다......”
마지막으로 교회와 목회자들의 삶과 언행에 많은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와 목회자가 받는 비난에서 떳떳하지 못하니 바른 치리가 행해질수 없는 것이다. 교회와 목회자들이 먼저 삶과 언행에서 신중하게 살아야 할것이다.
비난에서 떳떳하지 못한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은 치리한들 ‘다른교회로 가면 그만이다.’ 라고 생각할수 밖에 없다. 교회와 목회자가 이런부분에서 떳떳함을 잃어버리는 순간 치리는 사라진다. 바른 치리를 위해서는… 삶과 신앙에서 비난받지 않도록 신중하게 살아야한다.
한편 치리의 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즉 교회가 치리를 잃어버린것은 바른 치리를 해본적도 당해본적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동체성의 파괴,실용적이며 대중적인 교회, 교회의 자본주의적 운영방침등이 점차 치리를 몰아내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러다보니 어느덧 교회내에 치리를 받아본 기억도 바른 치리를 행한 경험도 없는… 그렇게 여기까지 온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교회가 바르고 떳떳하고, 견고해 지려면 치리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