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기대 (삶)/책과 삶 <책을 읽고>

<책을 읽고> lifeofoldman 님의 "바울과 함께 걸었네" 서평

그 길을 2025. 6. 1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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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2000년 전에 이스라엘 땅에 예수라는 사람이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요셉이고, 어머니는 마리아다. 그가 30살까지 시골마을에서 목수로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회개하라! 쳔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언하며 지금까지와는 전연 다른 방법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다. 그리고 죄인으로 몰려 십자가형을 받고 죽는다.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심취하여 따르는 12명의 제자가 있었고, 그들은 스승 예수가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그 스승처럼 살기를 결심하고 죽음을 불사했다. 그 때부터 예수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핵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렇게 되는데는 바울이라는 사람의 역활이 지대했다. 그가 그리스도교를 지역종교에서 세계종교로 확대하며 인류역사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바울과 함께 걸었네"는 저자 함선주목사가 2000년 전 바울의 전도의 발자취를 따라 성지순례를 하며 기록한 기행문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터키와 그리스는 복음의 확산지이다. 바울과 그의 전도팀의 열정이 그대로 녹아든 곳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곳을 밟는다는 것은 의미가 깊다. 잊혀진 하나님나라를 기억하는 것이요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 그 자체다".라고 성지순례의 의미를 부여한다. 바울이 어떤 사람인가를 저자를 통해 계속 들어보자.
 
"터키의 밀레토스는 사도 바울의 작별의 장소이다. 사도행전 20장 17절은 사도 바울이 밀레도 항구에서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 장로들을 오도록 했다고 기록 한다. 사도 바울은 이들과 마지막 시간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일까? 그는 에베소 장로들과 함께 복음을 위해 헌신 했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그의 사역을 회고하며 다소 장황하면서 마음이 담긴 고별설교를 한다.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교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아 내었습니다. 그리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동 장소에서나 각 집에서나 어디든지 가리지 않고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램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합니다. 오직 성령이 내게 알려주시기를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밀레토스가 항구였기 때문인지, 이 지역은 지대가 낮다. 바닷물이 내륙까지 밀려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해안선도 보이지 않는다. 폐허로 남은 유적들만 남아 있다. 저 항구 터 어느 지점에서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과 감동적인 작별인사를 나눴을 것이다. 밀레토스는 그런 의미에서 목회자들에겐 꿈과 소망이 담긴 곳이며 감동을 주는 장소라 하겠다. 달려갈 길과 예수께 받은 사명을 마치고 성도들과 감격스런 작별의 인사를 하는 모습은 목회자라면 어느 누구나 꿈꾸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신들의 도시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은 아름다웠다. 다음 일정을 위해 파르테논 신전을 뒤로 하였다. 그러자 인간의 영역인 아레오파고스가 보였다. 인간의 도시인 아레오파고스는 치열한 삶의 장소이다. 살기 위해 발버둥쳐야 하는 생존의 세상이다. 아레오파고스로 향하니 순간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정신이 퍼뜩 든다."

"그리스도인들도 적잖이 죽음을 마주 대하며 산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인생길을 걸어간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의 위안은 교회의 예배당에 있지 않다. 예배당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저기에 게시지' 하며 평안을 누리지 않는다. 교회를 일컬어 신의 도시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서 있는 이곳, 말씀대로 살아가는 현실의 삶을 하나님의 나라라고 한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살아가는 이곳을 하나님나라라고 믿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떤 웅장한 건축물에 가두지 않는다. 아니 절대 가둘 수 없다. 아무리 멋지게 교회를 건축하고 예배당을 화려하게 지어도 그분과 상관없이 산다면 하나님은 거기에 계시지 않는다.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행 7:49 >

하나님을 인간이 지은 건물에 가둘 수 없다. 하나님은 그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주인으로 모시는 이들의 마음 한복판에 계시고 그들의 삶의 자리에 계신다. 믿는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고 믿음으로 살아가 지경을 점점 넗혀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요, 그 나라가 확장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일상이며 이 일상이 하나님나라가 되는 과정이다."

바울은 다메색 도상에서 예수의 영과 만난후 그의 삶이 180도 변화를 받아 예수를 전하는 일에 생애를 바치고 순교하게 된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 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https://blog.naver.com/lifeofoldman/223412717964

"바울과 함께 걸었네" 를 읽고

지금부터 2000년 전에 이스라엘 땅에 예수라는 사람이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요셉이고, 어머니는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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