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 독일, 보름스 루터의 용기를 떠올리며...

2023년, 독일 보름스를 방문했다.
라인강변의 이 조용한 도시는 생각보다 소박했고, 그 안에 역사책에서나 보던 종교개혁의 숨결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날씨는 온화했고, 하늘엔 약간의 구름이 떠 있었다. 가볍게 걷기엔 오히려 더 좋았던 날이었다.
내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삼위일체 교회(Dreifaltigkeitskirche)였다.


중앙광장을 지나 성당처럼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이 건물은, 외관만 봐선 역사적 의미가 잘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교회는 단순한 예배당이 아니다. 종교개혁의 중심에 있었던 루터의 보름스 체류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상징적인 장소다.
보름스 삼위일체 교회 – 종교개혁의 정신을 기억하다

삼위일체 교회는 루터가 보름스 국회(Diet of Worms)에서 교황과 황제 앞에서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바로 그 사건을 기념하며 세워졌다.
내부에 들어서면, 루터와 종교개혁자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전시 공간과 상징물이 있다.
루터와 보름스 의회 – “나는 여기에 서 있습니다”
루터는 보름스에 1521년 4월 16일에 도착하였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카를 5세가 소집한 국회에 출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미 교황에게 파문을 당한 상태였고, 이 자리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하지만 루터는 이렇게 대답했다:

성서의 증거함과 명백한 이성에 비추어 나의 유죄가 증명되지 않는 이상 나는 교황과 공의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이 둘은 오류를 범하여 왔고 또 서로 엇갈린 주장을 펴왔습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고 또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심에 반해서 행동하는 것은 안전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현명한 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이 몸을 도우소서, 아멘. (1521년 4월 18일)
이 장면은 종교개혁 역사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 중 하나다.
말 한마디로 유럽의 교회 구조를 흔들었고, 이후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기틀이 되는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교회 앞 광장에 서서 그날의 루터를 상상해본다.
루터를 중심으로 한 종교개혁자들의 기념비를 보면서
정치 권력과 교권이 맞물려 있던 당시, 젊은 수도사가 그렇게까지 확신을 가지고 설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그 확신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이미 수 십년 아니 수백년 전부터 루터의 종교개혁을 지지하고 준비했던 선배들, 공동체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구름 낀 하늘 아래, 내 신앙의 안일함을 묵상하다.
그날 보름스의 하늘은 뿌연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지만, 답답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루터의 그 치열한 외침이 그 하늘을 뚫고 퍼져나갔던 것만 같았다.
여행지에서 종교개혁을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루터가 그랬던 것처럼 잠시 나도 신앙의 안일함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스크림이 맛있게 보였다. 손에 아이스크림 콘을 집어들고 삼위일체 교회 앞 벤치에 앉아 잠시 묵상했다.
여행은 이렇게 생각지 못한 곳에서 삶을 흔들고, 마음을 다시 조율하게 만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