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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든지 죽든지 (신학)/교회사

현 시국을 마주대하며 '역사의 되풀이'라는 말로 풀어보다.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6.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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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9일 오후 2시 30분 박근혜 대통령은 '제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였고 이른바 탄핵로드맵, 담화이후에 박대통령에 관하여 정부는 명예로운 퇴진이냐 탄핵이냐를 두고 정계가 혼란스러운 지경이다. 이번 제3차 대국민 담화가 그렇게 혼란을 가중하고 답답함을 자아내는 것은 담화문의 진정성과 명료성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특별히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습니다.' 라고 했던 박대통령의 결단속엔 과거 역사를 되풀이하는 듯했다. 국회는 국민을 대변하는 기관이기에 그의 말에 따르면 결국 국민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뜻이다. 그의 말속에는 어떤 잘못에 대한 인정도, 부끄러움도 없는 듯 보였다.

   과거 1960년 3월15일 이른바 3 15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이 재집권을 시도하기 위해 부정을 저질렀다. 즉 이승만은 부통령에 이기붕을 앉히게 하기위해서 자유당은 반공개 투표, 야당참관인 축출, 득표수조작및 폭력을 자행하였다. 그러자 마산에서 학생들과 시민들이 이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를 열었고, 정부는 이에 관하여 폭력적으로 진압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후 1960년 4월 11일 마산시위에서 실종된 김주열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채 시체로 발견됨으로서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게 되었고 마산에서 시위가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  

   그러던중 1960년 4월 18일 전국적인 시위가 일어나게 되는데, 고려대학교 4천여명의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돌아가던 도중 괴청년들에게 습격을 받아 크게 부상을 당하는 일이 있었으니 이 사건에 시민들이 격분하게 되어 4월 19일 총 궐기하에 "이승만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투쟁으로 이어진다.

 

("부정선거규탄학생 데모 전국에서 확대,"<동아일보> 1960년 4월 20일자.)

 

결국 1960년 4월 26일 이승만은 하야를 결의하고 정부통령 재선거 실시를 명한다.

 

나는해방후 본국에 돌아와서 여러 애국애족하는 동포들과더불어 잘지내왔으니 이제는 세상을 떠나도 한이 없으나 나는 무엇이든지 국민이 원하는 것만이 있다면 민의를 따라서 하고자 한것이었으며 또 그렇게 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보고를 들으면 우리 사랑하는 청소년 학도들을 위시해서 우리 애국애족하는 동포들이 내게 몇가지 결심을 요구했따하니 내가 이래서 말하는 바대로 할것이며 내가 한가지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동포들이 지금도 삼팔 이북에서 우릴르 침입코자 공산군이 호시탐탐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도록 힘써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1)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

(2) 삼일오 정부 부통령선거에 많은 부정이있다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지시하였다.

(3) 선거로 인연한 모든 불미스러운 것을 없이하기 위하여 이미 이기붕 의장에게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나도록 하였다.

(4) 내가 이미 합의를 준것이지만 만일 국민이 원한다면 내각책임제 개헌을 하겠다.

                                                                            이대통령하야 결의 정부통령 재선거실시" <동아일보> 1960, 4,27.

 

당시 이승만의 하야성명을 보면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4.19 혁명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부정선거에 대한 일절의 사실에 대해서 언급하거나 책임을 가지겠다는 내용보다는 '국민이 원하기 때문에' 하야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무엇인든지 국민이 원하는것만 있다면 곧 민의를 따라서 하고자 했던 것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부통령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다고 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지시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기붕 의장을 해임시키며 국민이 원한다면 내각책임제 개헌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선언과 동시에 국회에서는 이 대통령의 사임이후의 과정에 대해서 서로 다른 해석을 하여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는데, 그의 성명서가 내리고 있는 결단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는 다음 기사를 보면 알수있다.

동아일보 1960년 5월 3일자 신문을 보면,

그런데 일부의원들은 현재국회에 제출되어있는 이대통령의 사임서는 제 삼대대통령직사임의사만을 표명한것이고 제 사대대통령 당선사퇴를 표명한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고 제 사대대통령사퇴서가 제출된후에 국회가 당선사퇴를 선포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의견의 일치를 보지못하고 있는 것인데 이러한 견해차이를 조정하기 위해......  

이대통령이 지난 사월 이십칠일 하오 국회에 제출한 사임서는 다음과 같다.

 나 이승만은 국회의 결의를 존중하여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물러 앉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나의 여생을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바치고 자하는 바이다.”   <동아일보, 1960,05,03>

 

 즉 사퇴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이 모호했다는 것이다. 3대 대통령 사임만을 표명한 것인지, 4대 대통령 당선사퇴를 표명한 것인지에 대해 모호하다는 것이다. 강준만역시 이승만이 내어놓은 성명의 모호성 때문에 국회에서도 문제를 제기했으며, 결국 주한 미 대사 월터 매카나기와의 면담을 통해 결정적으로 하야를 겸심했다고 밝히고 있다. (강준만,2012.) 당시 미국과 매카나기는 4.19의 혁명으로 인해 고조된 시민들의 분노를 안정시킨 역할을 충분히 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다시말하자면 주한 미대사가 미국에게도 좋은 일을 그리고 국민에게도 좋은 일을 제공한 것이다. 웃을수만 없는 정치 쇼 같은 분위기가 제공되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개입'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2016년 11월 29일 오후 2시 30분 제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였다.

[박근혜 대통령 제3차 대국민 담화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의 불찰로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한번 깊이 사죄드립니다.  

이번 일로 마음 아파하시는 국민 여러분의 모습을 뵈면서 저 자신 백번이라도 사과를 드리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다 해도 그 큰 실망과 분노를 다 풀어드릴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 제 가슴이 더욱 무너져 내립니다.

국민 여러분, 돌이켜보면 지난 18년동안 국민 여러분과 함께 했던 여정은 더없이 고맙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1998년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부터 대통령에 취임하여 오늘 이순간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해왔습니다. 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한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저의 큰 잘못입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경위는 가까운 시일 안에 소상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그동안 저는 국내외 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길인지 숱한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고 또 고민하였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저의 결심을 밝히고자 합니다. 저는 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습니다. 여야 정치권이 논의하여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저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하루 속히 대한민국이 혼란에서 벗어나 본래의 궤도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대한민국의 희망찬 미래를 위해 정치권에서도 지혜를 모아주실 것을 호소드립니다

 위의 담화문 전문을 살펴보면 박대통령은 먼저 한번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국가로 인한 공적인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한 일들이었으며,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잘못이라고 하였다. 담화문 발표이후 이와 관련하여 조국 교수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서 “단 한 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담화 당시 발언을 두고 “’광주사태는 나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전두환의 말과 같은 급의 뻔뻔한 발언”이라고 주장했다.

(출처: http://news.donga.com/3/all/20161130/81593391/2#csidxc3aae5837c83ea6b42121f891eea8bd )

 어째든 재미있는 것, 과거 이승만 대통령도 박근혜 대통령도 담화문이나 성명선언문 같은 글엔 국가와 국민을 향한 진정성있는 태도랄지 명료한 내용들은 보이지 않았으며, 이후에 정부와 국민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키는 셈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승만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내기까지 4.19 혁명의 시민들의 분노가 있었으며,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이 있기까지 100만이 넘는 국민들의 분노가 있었다. 이른바 촛불시위 말이다. 그리고 이승만이 미국의 권유에 하야를 결정한 것처럼 박근혜도 이른바 하야 영웅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지만, 좀더 지켜볼일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잘못에 의한 것이 아닌 국민들에 뜻에 따른 결정을 하였다고 하였다. 오늘날 박근혜정부는 불통의 아이콘으로 등극하여 박정희 유신정권으로 되돌아 갔다고 하더니 이제는 이승만정권으로 되돌아 간것 같다.

 결국 박근혜의 대국민담화문을 통해서 '하야' 든지 '탄핵'이든지 그 로드맵을 국회에서 결정되고 있으며 그 조율을 위한 여야의 합위를 도출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니 곧 대선이 앞당겨질것이며 100만이 넘은 촛불시위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두고봐야 할것같다.

 '역사의 되풀이'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다시 꺼내본다. 이승만의 하야와 더불어 4.19혁명은 '미완의 혁명'으로 남았다는 역사가들에 평가를 되돌아본다. 혹은 5.16군사정변에 의해 '빼앗긴 혁명'이라고 결론짓기도 한다. 필자는 100만이 넘은 촛불의 시위가 국민의 힘을 보여주는 비폭력 저항의 아주 좋은 선례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국민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민심을 잃은 한 사람의 수장이 어떻게 끝이 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었다면, 이제는 탄핵로드맵, 또는 다음 대선을 위한 행보, 국정의 정상화를 위한 국회의 여야의 모습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이어야 할것이다. 

 무엇보다 분열된 민심을 하나로 만들어주며, 머리를 맞대고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할지 당의 이익에 몰두하고 기회를 잡기위한 방책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들로 점차 회복시켜나가야 할것이다. 그래서 '미완의 촛불시위' 또는 '빼앗긴 촛불시위'가 되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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