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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대 (삶)/신뢰의 길

주님께 붙들려 나는 간다! ㅠㅠ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1.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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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것은 완성의 개념이 아니라 방향성이다. 

영성은 지성이다. 교회가 행하는 잘못은 잘모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육신으로 아는 것은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이다. 
예수님을 왜 믿는가? 자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내가 질되기 위해서...?
 잘되기 위한 신앙은 치열한 공동체가 된다. 왜냐 그자리는 치열하게 싸워야 얻는 자리기 때문이다 이런신앙은 철저한 신앙의 이기주의로 성장하게 된다. 

 부단히 우리는 미래, 현실 에대한 두려움때문에 기도하고 봉사한다. 그리고 목사들은 그것을 부추긴다 교회는 어느덧 치열한 경쟁적인 장소가 되어버리게 된다. 종교적 두려움...때문에 교회가 상처받는다...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육신대로 아는게 아니다. 그리스도에게 우리가 요구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주실게 없다. 주님은 믿음의 대상이지 종교적 대상이 아니시다 선물이시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모든것을 이미 다주셨다. 그분자신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우리는 이미 자신을 모두 내어 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용서받고 탕감받았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모든것을 다주셨는데 왜자꾸 달라하는가?
그분은 생명까지 아낌없이 우리에게 모두 주셨는데, 우리는 더 달라고 요구한다. 주님은 더이상 우리에게 줄것이 없으시다.

마음의 두려움은 끊임없이 종교적 욕구를 자극 시킨다. 마음의 두려움은 섬김과 봉사의 댓가로 능력을 구하고 물질을 구하고 삶의 안정을 구한다. 이것은 실로 종교적 두려움이다.

종교적 두려움이 많은 교회는 교회와 목사에게 헌신하지만 그리스도에게 헌신하게 하지 않는다.  사실 그리스도에게 헌신하는 건 드러나지 않는것이다. 

우리는 값을것이 없어서 헌신하는 것 아닌가....

우리의 헌신은 먹고 살기위한게 아니라 먹든지 마시든지....감당할수 없는 것에 감사함으로 헌신하는것 이다.

주님께 붙들려서 나는 간다..

나는 종교인인가 복음으로 붙들린 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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