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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대 (삶)

오산리기도원....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5.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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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휴가 막바지라. 조용히 하나님앞에 있고싶어서 기도원에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아침 시은이의 기침때문에 병원에 갔고 허겁지겁 병원진료를 받고 12시 다되어서 기도원으로 출발했다.

가평 필그림하우스나 영락기도원을 가려고 했으나 12시가 다되어 가까운 오산리 기도원으로 향했다.

사실 기도원 신앙은 내 옷이 아니다.
기도원은 정말 기도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산리로 간것은
회복과 충전을 위한 갈망때문이었다.

기도굴로 항했다. 음 그곳은 모기굴이었다.
예배실로 향했다. 집회가 시작되어 기도할수 없었다. 게다가 경찰 복음화집회로 기도원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숙소를 잡으려했으나 이미 방은 꽉찼다. 증가수양관도 연락해봤으나 수련회로 인해 방이 꽉찬상태라 하니.....

그냥 그곳에 머물러 있을수 밖에 없었다.
산으로 올랐다 조용한 장소가 있길래
잠잠히 기도하려 앉았다.
그러나 기도시간도 잠시
모기로 인해 도망나와야했다.

결국 2시가되어 기도원을 내려왔다.
이럴줄알았으면 학교로 갈것을....장신대 침묵기도실이 그리웠다.

누군가 그랬다.

하나님을 위해 장소와 시간을 확보한다는거
참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이다.

내안에 기도에 대한 갈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내 주변에 기도를 위한 시간과 장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기도원에 다녀오겠다고 나서는 아들을 향해 어머니가 그러셨다.

"목회자들은 자신만의 기도장소를 한곳정도는 정해 놔야 한다....."

오늘 오산리 기도원가면 그래도 기도할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기도원에 갔으나 기도하는 장소를 못찾아 힘들었다.

작은 침묵속에
수로보니게 여인....의 이야기를
묵상할수 있었다.

그 여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딸을 고쳐줄 마음이 없어 보이는
예수께 매달린 이유는 무엇일까.

"자녁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

자녀는 분명 선민 유다인들을 향한 언급일것이다. 유대인들은 분명 당연한 말씀이라고 생각했을것이다.
그런데 그 이방여인에게.

"가라 내믿음이 너를 구하였다" 하셨고 고치셨다.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을 완전히 깨트리는 듯한 그분의 언급은 사실 이방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라기 보다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인것 같다.

그 이방 여인의 갈망
너희들이 개라고 여겼던
이방여인의 믿음
너희들은 무엇을 갈망하고
무엇을 찾고 있느냐고 물어보시는 것 같다

주일... 예배.... 세례....이신칭의 교리
교인됨.....

마치 유대인들이 선민이라고 여기는 그런 요소가 우리에게도 있다. 우리도 선민된 유대인들처럼 이미 구원받은 이들이라며 으스된다.
주일예배에 나오면 하나님과 관계를 다했다고 여긴다. 세례받으면 교인이라고 믿는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더이상 주를 향한
어떤 갈망도
어떤 두려움도 없는 것 같다.
신앙과 삶의 불 연속적 삶을 사는것 같다.

본문에 예수께서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말씀하신 "내 자녀"는 "교회에 잘 다니는 나" 라고 스스로 여긴다. 예수님이 교회 안다니고 구원받지 못한 이들에게 온정을 배풀지 않는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이야기는 유대인들에게 헛기침 나오게 할만한 이야기다. 선민사상을 완전히 뒤집는 이야기이다. 마찬가지로 안일한 그리스도인들의 뇌리에 번개를 칠만한 당황스러운 이야기일만하다.

더 깊게 묵상하기는 나도좀 곤란하다.
그저 내가 묵상한 데 까지 적어보고자 한다.

나를 개라고 여기는 신앙이 필요하다 싶다.
주님이 우리의 주인이라고 여기는 믿음이 절실하다 그분을 갈망하는 마음에 굶주리고 싶다.

나의 관심사 나의 믿음
나는 무엇을 갈망하는가....
수로보니게 여인의 이야기는
그것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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