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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따라 (교회와 공동체)

교회론의 적용에 대한 문제 (대안제시)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1.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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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표지, 교회의 사명, 교회의 본질 등을 정리하고 이를 통해 현실의 교회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 볼 것.

 

문제제기와 대안

 

과연 이시대가 교회의 표지를 가졌는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과거 교회의 표지는 조직체에 가까웠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유기체 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몸이며 그것은 바로 신비이다. 교회는 예수님의 구속사역의 신비에 참여 하며 그리스도의 몸인 새로운 공동체의 새로운 인성의 경이로움을 경험한다. 이것을 하워드 스나이더는 교회의 DNA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몸으로 구성된 유기체적인 교회는 첫째 하나일 뿐아니라 다양하다. 둘째로 교회는 거룩할뿐아니라 은사적이다. 셋째 교회는 보편적이며 지역적이다. 넷째 교회는 사도적인 만큼 예언자적이다.

이것을 통합해보면, 교회는 철저히 성육신적이며 선교적이다.

이러한 쌍으로 구성된 표지들이 교회의 체험이 될 때 교회는 어떤 상황에서도 강한 역동성을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때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본질적인 유전적 자질들을 상실한다.

오늘날 교회의 표지는 예수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기초하였다.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에 기초한 위의 네가지 교회의 표지를 가지고 현실의 교회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한다.

 

첫째 교회는 하나일뿐만 아니라 다양하다. 교회는 다양하며 가지각색이다. 초대교회의 회중들의 다양성, 인종의 다양성, 계층적 다양성들을 충분히 찾아볼수 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안에서 일치를 강조할 뿐아니라 다양성을 강조하고 있다. 교회는 다양한 문화가운데 서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철저히 세상으로 보냄받은 부르심을 받은 무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무시할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셔서 세상과 다양한 문화에 참여한 것처럼 교회도 문화에 참여해야 한다. 교회는 더 이상 “끌어 모으기식”의 교회가 아니라 관계와 우정과 친밀함의 마음을 통하여 그들의 삶과 문화와 현장으로 들어가 그들의 삶과 경험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는 흩어져서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가 되기 위해 사회의 틈과 가라진 곳에 스며들어야 한다. 바로 성육신적 선교적 교회가 되어야 한다.

다양한 문화을 경험하며 다양한 교회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이다.


째 교회는 거룩할 뿐아니라 은사적이다.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께서 교회에 다양한 은사를 주신다. 그분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교회는 예수님의 인격과 카리스마 둘다를 구현하면서 성령의 열매와 은사를 통해서 최상의 기능을 발휘한다. 은사는 신약성서에서 사도들이 행한 이적과 기사에서 명백히 나타난다. 또한 그것은 예배를 통해서 나타난다. 진리안에 있는 예배는 두렵고 깨끗하게 하며,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임재에 감동되어 하나님안에서 드리는 예배이다.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은 때로는 경외감에 사로잡힌 침묵으로 어떤 때는 웃음소리와 부르짖음으로 또는 기뻐하며 추는 춤으로 이끈다. 경험적이며 신비적인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도록 해야한다. 예배는 신적 주권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며 은혜롭게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주도된다. 다음세대를 얻기 위한 포스트모던 시대의 교회예배는 ‘보는 예배에서 느끼는 예배’로 이행할 필요가 있다.

 

셋째 교회는 보편적이며 지역적이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특별한 자기 취향과 방식 문화를 갖고 있는 매우 다양하고도 특정한 지역공동체로 동시에 존재한다. 교회는 이미 밝힌대로 성육신적이다.

성육신적 교회론은 상황적 교회론으로 유도한다. 성육신 사건은 구체적 문화적 상황 속으로의 참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미 밝힌 대로 교회의 선교는 “문화적 상황 속에서 복음을 살아내는 것”이며, “복음을 구체적인 문화 상황으로 들고 들어가 육화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지역을 섬기는 교회로서 파송받은 선교적 사명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지역 내에 가르침, 치유 보살핌 설교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공동체들을 세우는일들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가난한자들 가운데서 복음을 육화 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과 교회와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에 기초하여 긴밀히 관계가 살아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대형교회 시스템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소그룹으로 떨어뜨려 유기적인 네트워크가 이루어 지도록 하는 방식이 적절하다. 다양한 기능적 소규모 교회 공동체 통해서 영향을 미칠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사도적이며 또한 예언자적이다. 교회는 사도이신 동시에 예언자로서 교회를 세우신다. 성부가 예수님을 보내셨듯이 교회도 세상으로 보냄을 받는다는 의미에서 교회는 사도적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예언자적인 메시지를 세상에 그대로 육화시키도록 선포하는 사명을 받은 예언자적인 공동체이다.

사도란 자신이 선포하는 메시지를 체여하는 사람이다.

그런의미에서 우리가 곧 메시지이다. 우리는 우리 삶이 주위의 사람들이 항상 읽을수 있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여겨야한다. 그런의미에서 교회는 생태적인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 보아야 한다.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제는 구도자를 복음을 듣게하도록 끌어모으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대신 교회는 세상속의 교회로 선교하러 밖에 나가기위해 모인 예배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초대하는 교회에서 침투하는 교회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제도적이며 관료적인 구조는 포스트 모던 시대에는 부적절하다. 교회는 선교적으로 사회에 진입하도록 흩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도적이며 예언자적 위치를 감당해야한다.

 

결론으로써... 목회자가 준비해야 할것은 무엇보다 올바른 교회론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적이며 신학적인 토대위에 서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 대중문화와의 대화를 계속하여, 오래된 질문이든 새로운 질문이든 성경에 대한 질문을 이끌어내는 비판적인 상황화 작업에 참가하는 것이 다급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포스트모던 환경에서의 선교와 목회에 대한 도전들에 대응할 통찰력을 찾으며, 성경을 새로운 시각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성경과 문화를 모두 능숙하게 해석할 수 있어야 하며, 포스트모던 적인 문제들에 성경적인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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