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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대 (삶)/책과 삶

경계를 허무는 삶에 관하여.... 6월 29일 단상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6.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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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수님 방식의 영성을 추구한다는 말은 경계를 허무는 자가 된다는 뜻이다. 
예수님처럼 우리는 문화가 그어놓은 온갖 경계로 가득한 세상을 산다.

인종과 민족의 경계, 사회적 신분의 경계,

정치적 성향의 경계, 종교와 생활 방식의 경계를 비롯해 온갖 경계가 즐비하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생각하는 악명높은 죄인들이있다. 
우리에게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문화가 그어놓은 경계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편안하게 살아가는데 너무나 익숙해져있다." 
-베리 존스, Dwell,성서유니온, 121.

 

 베리존스는 아주 날협하게 현대인의 영적인 삶을 표현하고 있다.

경계선을 긋고 사는 삶에 익숙해져있다고 말이다.

그의 통찰에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여기에 내 생각을 덧붙이면...

경계를 허문다는 것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 사셨던 데로 사는 성육신의 삶은

그자체로 경계를 허무는 삶이었다는 것 인정한다.

그러기에 더욱 경계선을 허무는 자로 살아야 함이 마땅하다.

 

그런데.... 그 경게선을 허문다는 것. 그런 삶을 산다는 것
통제와 단속내지는 인권을 유린하는 감시로서 누군가가 강요에 의한 것은 되어서는 안된다.

 오직 경계선을 허무는 삶은 자발적인 것이어야 하며

더 나아가 사랑과 관심 긍휼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가 모임속에 소위 '정직한 나눔'이라는

아주 좋은 전통을 때때로 폭력과 같이 요구할때가 있다. 
당신의 경계선을 허물라고 요청하는 것은 누군가에 의한 폭력이다. 

 

우리주님이 경계선을 허무신 것은 그자체로 자발적이었으며 사랑이며 긍휼이셨으며 겸손함이셨다.

어떤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그것을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만 기다려줘야한다. 

 

경계선을 허무는 삶을 사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다. 
먼저 우리 주님이허무셨던 것처럼 내 자신이 먼저여야 한다. 
사랑과 긍휼과 겸손이 먼저다. 
그게 경계선을 허무는 삶의 방식이다.

 

경계를 허무는 삶에 관하여.... 짧은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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