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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든지 죽든지 (신학)/교회사

동방정교회의 ‘예수기도’와 한국교회의 ‘통성기도’ 비교연구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24.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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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는 뒤에 참고문헌으로 대신합니다. 
 
동방정교회의 ‘예수기도’와 한국교회의 ‘통성기도’ 비교연구 _ 함신주 

Ⅰ. 서론
 
Ⅱ. 예수기도.
 

  1. 헤시카즘(Hesychasm)과 예수기도(The Jesus Prayer)

2. 예수기도의 역사
3. 예수기도의 방식
Ⅲ. 통성기도.

  1. 한국교회와 기도 

2. 한(恨)의 정서를 담은 통성기도
3. 통성기도의 역사 ‘한의 정서를 중심으로’ 
 
Ⅳ. 예수기도와 통성기도 비교. 
 
1. 차이점과 비슷한 점

Ⅴ. 결론 : 예수기도와 통성기도를 통합한 기도 모델. 
 
 
 
---참고문헌---
 
 
 Ⅰ. 서론
     오늘날 한국교회는 기독교 영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높아지는 관심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영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대답하기조차 애매하고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기독교 영성은 우리의 초월적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 그리고 삶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신앙 공동체와 더불어 열매를 맺어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영성 훈련이란, 반복된 기도나 말씀 묵상 등을 통해 습관적으로 우리의 중심을 하나님에게 향하게 하고 그러는 동안 우리의 영혼 안에서 하나님이 활동하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영성 훈련에 있어서 기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본 연구는 영성 훈련에 중요한 기도에 관한 연구이다. 기도는 영적 언어이다. 언어는 민족공동체를 형성하게 만드는 정체성이다. 그러므로 현재 한국교회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한 것은 영적 언어인 기도인 것이다. 기도에 관한 연구는 현재 한국교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발견하게 하는 도구가 된다. 기도의 역사, 교회속에 나타난 기도의 전통들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현재 한국교회를 형성하게 만든 기도의 방식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과 미래의 기도의 방식과 모델을 제시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교회내에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개인 영성에 대한 목마름이 증가되고 있다. 최근 한국교회는 개인기도 영성 즉 침묵기도, 예수기도와 같은 오랜 전통의 기도 방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 동시에 예배와 집회에서는 통성기도와 같은 방식의 기도가 이어지고 있다.
본 연구자는 오랜 기도의 전통인 예수기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통성기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각 기도의 특성들을 통해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어떤 비교점들이 있는지를 고찰하고 통합할 수 있는 방안 들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영성훈련은 언제나 교회의 과제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으로 넘쳐흐르고 있다. 교회는 이들의 영적 지향을 하나님을 향하도록 옮겨주어야 하며, 하나님의 현존 가운데 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은 기도의 방식을 통해 가능하다. 교회는 성도들이 어떻게 기도의 삶을 살 수 있을지를 도와주어야 한다. 다소 생소하지만 옛 수도자들의 기도 방식인 동방정교회의 마음의 기도로 알려진 예수기도를 통해 어떻게 기도 해야 할지를 해답을 얻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널리 알려진 통성기도를 통해 기도의 핵심가치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기를 원한다. 뿐만 아니라 두 기도의 상호 보완을 통해 기도의 더 넓은 지경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Ⅱ. 예수기도
 
1. 헤시카즘(Hesychasm)과 예수기도(The Jesus Prayer)
     예수기도(The Jesus Prayer)를 다루기 전에 먼저 관련 용어를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헤시카즘(Hesychasm)은 동방정교회에서 가르치는 수도원 제도이자, 영성전통을 의미하는 것이며, 헤시키아(hesychia)는 고요, 침잠, 내적 평화 등을 의미하는 말이다. 유해룡은 영혼이 정념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하나님과의 거룩한 친교를 이루기 위해서는 참된 헤시키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보았다. 여기서 말하는 정념으로부터 자유케 된 무정념이란 영혼의 세기능인 지성의 능력, 미각적 능력, 분개의 능력등의 기능이 본래대로 회복되는 영혼의 상태를 말한다. 무정념을 성취한 순수지성은 마음으로 내려가서 맑은 시선을 회복하고 빛으로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이 예수기도는 고요와 침묵속에서 예수의 이름을 전 존재의 주님으로 부르며 혼란스러운과 분노, 두 마음을 품는 것을 물리치고 고요와 평정심으로 들어가는 기도 방법인 것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예수기도의 초기기원은 사막의 수도사들로부터 시나이의 수도원 전통 이르러 발견된다. 그리고 10-13세기 동안 아토스산의 영성가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발전하게 되고 러시아로 이어져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다. 동방정교회의 헤시키아 영성을 통해 나타난 예수기도의 목적은 마음의 단순성과 동시에 순수한 지성이 마음으로 내려오게 하는 것에 있다. 본 연구는 교회사에 나타난 동방교회의 헤시카즘, 헤시키아 영성에 관하여 그리고 동방정교회의 오랜 전통이며 단순한 기도인 예수기도가 어떻게 발전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예수기도의 역사
 
1) 사도시대에서 사막교부들 : 짧은 단문의 기도.
     앙리 피에르 링켈(Henri Pierre Rinckel)에 의하면 예수의 이름을 반복하여 부르는 것과 관련하여 4세기 이전에는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된 시점부터 더 이상 박해를 피해 사막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자들은 다시 사막을 찾기 시작했는데, 이는 영적 갈증 때문이었다. 이때 수도사들은 모놀로기스토스(monologistos)’로 명명된 짧은 양식의 단음절 기도를 하였다. 
     요한 카시아누스의 『담화집』 에는 4세기부터 이집트 수도사들이 짧은 문장을 반복하는 기도의 방식으로 기도했다고 기록하였다. 4세기 이집트의 수도원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예수기도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두 인물이 있다면 에바그리우스(Evagrius Ponticus, 345-99)와 마카리우스(Macarius the Great of Egypt, 300-90)이다. 이집트의 수도승들은 매일 성무일도 중에 ‘내 주 예수께 드리는 찬가’ 라는 시가를 노래했다. 찬가들은 시편에서 뽑은 것이 많았고, 구절마다 “내 주 예수님, 저를 구하러 오소서” 라는 후렴이 반복되었다. 또한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건지소서(시 70:1)과 같은 구절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2) 시나이의 성 카타리나 수도원 : 예수 기억, 부름 그리고 호흡.
     헤시카즘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수도원 중 한 곳이 시나이의 성 카타리나 수도원이었다. 성 카타리나 수도원은 527년- 535년 바실레우스 유시티니아누스 1세때 설립된 수도원이다. 성 카타리나 수도원은 단음절의 기도로서 은수자적 성향을 유지하면서 하나님께 몰입하는 기도를 이상으로 삼았다, 이 시기 시나이 수도원의 원장이었으며 13-14세기 헤시카즘 부흥에 영감을 준 요한 클리마쿠스(John Climacus)는 그의 『낙원의 사다리』 (The Ladder of Paradise)에서 기도에 대해 이렇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예수에 대한 기억이 당신의 호흡과 일치하게 하라. 그러면 당신은 헤지키아의 유용성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즉 요한 클리마쿠스는 단순한 묵상을 넘어서 예수에 대한 기억, 호흡의 조절과 연계된 기도의 실천, 그리고 헤시키아의 유용성을 언급하고 있다. 요한 클리마쿠스에 이어 10세기경에 들어가면서 아토스 산의 수도사들을 중심으로 예수기도의 전통이 이어지게 되었다.   
 
3) 아토스산 : 마음과 호흡법이 연결된 예수기도.
     10세기 중엽 아토스산은 수도승 생활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곳은 콘스탄티노플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국가와 교회의 크고 작은 사건들에 크게 연루되지 않았다. 결국 아토스산은 헤시키아를 지키는 이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초기 수도사들이 5-9세기 사이에 아토스 산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형태의 수도승 생활이 조직화 되었다. 더불어 10세기 중엽이 되면서 예수기도의 전통이 꽃이 피었고 이곳으로부터 동방교회 곳곳으로 이 기도방식이 퍼져나갔다. 
13세기 후반에 살았던 아토스산의 은수자 니케포루스(Nicephore I’Hagiorite) 는 호흡법과 연결된 예수 기도를 증언하는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마음의 역할과 호흡과의 관계를 명확히 한 후, 들숨과 함께 코로 들이쉬면서 마음으로 내려와야 하는 정신 집중을 가르친다. 고요해진 정신이 마음으로 내려올 때, 속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님,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라고 부르짖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4) 러시아 : 순례, 예수기도의 실천.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함락된다. 이에 러시아의 모스크바가 비잔티움의 영적 계승자로 간주되었다. 예수기도는 14세기에 러시아에 소개되었다. 특별히 4세기부터 15세기에 이르기까지 동방정교회의 헤지카스트들의 삶과 예수기도에 관한 중요한 문헌 수집하고 편집하여 5권 분량의 책 필로칼리아가 1782년 베니스에서 헬라어로 출판된다. 아토스의 수도승 니코데무스 (1749~1809)의 『필로칼리아』를 슬라브어로 번역하는 일에 착수했다. 그는 이 번역본에『도브로톨리우비에』라는 제목을 붙였다.
1782년 니코데무스는 베네치아에서 코린토의 대주교 마카리우스(1731~1805)의 도움을 받아 『거룩한 넵틱 교부들의 필로칼리아』(Philocalie des saints neptiques)라는 제목으로 순수한 기도에 관한 교부 문헌 모음집을 출판했다. 19세기에는 주교인 은둔자 테오판(Thephan the Recluse, 1815-1894)은 필로칼리아(5권)를 러시아어로 번역하게 된다.    
     또한 러시아에서 1870년에 출판되어 1884년 카잔에서 익명의 사람에 의해 쓰여진 『이름없는 순례자』(The Way of a Pilgrim)는 순례의 길을 떠난 한 순례자가 영적스승(Starets)을 만나 쉬지않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예수기도에 대해 배운다. 이 예수기도를 실천하면서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하는 헤시카즘의 영성을 소개하고 있다.  

3. 예수기도의 방식 

1) 짧고 지속적인 기도
     이미 앞에서 밝혔다시피 예수기도는 ”내 주 예수님, 저를 구하러 오소서.“ ”나의 주님 예수여 저를 구하소서‘ 와 같은 단문형식의 기도(monologistos)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방식이다. 이에로테오스 대주교는 그의 책 『예수기도』(The Jesus prayer)의 서문에서 기도의 효과에 대해서 4가지로 밝힌다. 첫째 단순하고 탄력이 있다. 둘째 깊이가 있다. 셋째 예수 이름에 능력이 있다. 넷째 지속적인 반복의 영성훈련이다. 즉 예수 기도는 자체로 짧고 지속적인 기도이며 짧은 기도 속에 얻을 수 있는 많은 유익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유해룡은 예수기도는 반복적인 훈련을 통하여 순수지성을 한곳으로 집중하게 하며 기도가 자신의 존재의 한 부분이 되게 한다고 밝힌다. 이때 기도는 침묵 속으로 드려지지는 기도로 이어지며 이것을 마음의 기도(The Prayer of the heart)라 한다.
짧게 그리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이유에 대해 『필로칼리아』(Philokalia)에서 헤시키오스(St. Hesychios the Priest)는 “경성함과 거룩에 관하여” 편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어느 지혜로운 사람이 말한 것처럼, 예수님의 이름을 당신의 호흡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십시오 그러면 고요의 축복들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끊임없는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이름없는 순례자』에서 발견할 수 있다. 본문 속 영적 스승은 주인공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내심으로 하는 끊임없는 예수기도 란, 예수님이 자신앞에 계시다고 생각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심지어 잠들었을 때 조차, 항상 생각과 마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끊임없이 줄곧 부르는 기도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즉 동방교회의 전통에서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은, 기도의 습관을 마음에 들여야 하는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기도할 수 있도록 짧은 단문형식이어야 했고, 기도의 습관이 될 수 있도록 호흡과 심장 박동 소리 같은 것을 통해서 수행하였다. 그런의미에서 예수기도는 끊임없이 기도하는 탁월한 기도 방식인 것이다.
 
2) 예수를 부름 
     토마스 슈피들릭(Spidlik Tomas)은 『그리스도교 동방영성』(The spirituality of the Christian East)이라는 그의 저서를 통해서 예수 라는 이름의 신심은 그리스도교적 감성이 점차적으로 눈을 떠가는 결과라고 말한다. 링겔은 중세시대에 이르러 예수 호칭을 부르는 것에 신심이 고조되었다고 밝힌다. 흥미롭게도 중세의 수도사들은 예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악귀와 싸우도록 가르쳤다는 것이다. 
 
”포르테 수도원 설립자 베르나르 드 바레(1156~1159경)는 예수 이름을 부름(예수호칭)으로써 악한 세력과 싸우도록 수녀들에게 조언했다. 예수를 부름은 마음의 경계를 실천하도록 도와준다. 예수호칭은 시토회 영성에서도 간과되지 않았다. 구세주의 이름은 베르나르두스(1090-1153)에게 영감을 주었다.“ 
 
     헨리 나우웬(Hennri J. Nouwen)은 『기도의 삶』(The only necessary thing: Living a Prayful Life,)에서 ”이름 없는 순례자“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농부가 한 러시아의 수사로부터 예수기도를 소개받고 실천하는 그 장면을 통해 예수기도가 얼마나 경이롭고 풍성한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그것은 예수를 부름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는 표현속에 모든 기도가 강하게 압축되어 있다. 이 기도는 우리를 위해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드리는 기도이다. 이기도는 그분을 그리스도, 기름 부음 받은 자, 메시아, 우리가 기다려 온 분으로 선포한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는 경이로움과 풍성함을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예수 이름 자체가 어떤 힘을 가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옛 수도사들이 고백하는 것처럼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우리가 구원받아야 할 존재라는 신앙고백과 더불어 하나님의 임재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믿는 것이다. 예수의 이름을 부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을 경험하며 그의 능력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3) 마음의 기도
     예수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육체와의 연결성이다. 헤시카스트 수도자들은 육체는 기도에 참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기도할 때 몸의 자세가 중요하다. 기도자는 기도할 때 때로는 최대한 낮은 자세로 무릎을 꿇어 기도하기도 하였다. 더욱이 수도사들은 낮은 자세로 기도에 최대한 집중하기 위해 기도의 중심을 모든 정신적 윤리적 생명의 중심인 심장에 두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 중심에 그레고리 팔라마스(Gregory Palamas; 1296-1359)가 있다. 그레고리 팔라마스는 기도 중에 인간의 이성(nous)은 인간의 내면 중심부(heart)로 하강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 중심부나 심장이란 의미는 인간 존재의 정신 · 신체적인 현실(psychosomatic reality)의 중심을 상징하는 것이다. 팔라마스는 이것이 성서적 전통에 가장 부합하는 이해라고 여겼다. 링켈도 아토스산의 한 은수자의 예를 들어 기도안에서 마음(심장)의 위치와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기도가 지속되는 한 우리는 외부에서 마음을 돌려 우리 안으로,즉 심저로 향하기 위하여 주의를 신체의 한 기관인 심장(마음)에 둔다.” 이미 아토스산의 수도사로 소개한 니케포루스(Nicephore I’Hagiorite)는 『마음 살핌과 절제에 관하여』라는 작품에서 호흡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있다. “앉아서 네 정신을 모아 그것을 콧구멍으로 들여보내라. 이것이 숨을 이용해 마음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공기를 들이쉬자마자 그것을 밀어 넣어 네 마음으로 내려가게 하라.” 수도사들은 예수기도에 있어서 짧은 단문 형식의 기도와 더불어 호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숨을 이용해 마음으로 들어가도록 하였다. 실제로 심장의 박동수에 집중하여 기도와 연결하였다. 그러므로 마음의 기도는 머리에서 호흡 그리고 마음(심장)으로 이어지는 기도라 할 수 있다.    

Ⅲ. 통성기도.

1. 한국교회와 기도
 기도는 종교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언어는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각 종교에 나타난 영성의 형태를 살피기 위해서는 그 언어인 기도의 역사적 흐름과 그 방식들을 분석하고 연구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의 영성은 단연 기도의 영성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도의 영성이 한국교회의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기도는 한국교회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기도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비한 수준이다. 
     한국교회의 기도는 여러 방식으로 존재해 왔다. 배연주는 한국교회의 예배에 나타난 기도의 분류체계와 구조적 특징들을 의사소통의 민족지학의 관점(ethnography of communication)에서 기술하고 분석하였다. 배연주는 한국교회의 예배와 집회에서 나타난 기도의 종류는 크게 5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텍스트의 형식성 및 공식성 순으로 정렬해 보면 1. 주기도문 2. 대표기도 3. 통성기도 4. 방언기도 5. 침묵기도 이다. 기도가 형식적이고 공식적인 것에서 즉흥적일수록 성도들은 인간의 의도성이 배제되고 신의 행위성이 강화된다고 여겨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성도들이 신의 행위성 즉 신성이 강화된다고 여기는 통성기도와 방언기도 그리고 침묵기도는 기도의 방법적인 측면에서 크게 발성(發聲)의 방식과 침묵(沈默)의 방식으로 나뉘어진다. 특별히 한국교회에서 교단을 구분하지 않고 보편적으로 하는 기도의 방식은 통성기도라고 불리우는 발성기도의 방식이다. 통성기도는 주일 예배 뿐아니라 부흥회와 같은 주요 영성 집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방식이다. 주일예배와 부흥회와 같은 곳에서 보편적으로 행해지면서 한국교회의 전형적인 기도 방식이 되었다. 그렇다면 통성기도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방식은 무엇일까? 

2. 한(恨)의 정서를 담은 통성기도

     이미 밝힌대로 한국교회 내에서 통성기도는 공동체적인 기도로 자리잡았다. 통성기도는 온 신앙 공동체가 성령 안에서 함께 부르짖으며 마음에 있는 눌림과 아픔, 상처들을 그대로 토로하는 기도이다. 이러한 탄원의 형식을 담은 탄원기도는 한국의 독특한 정서인 한(恨)에 기초한 기도라고 할 수 있다. 김인수는 개신교의 전래와 수용에 관한 연구에서 부흥운동에 나타난 통성기도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는 통성기도는 오늘날까지 한국교회내에 가장 많이 통용되는 기도 방식의 하나이며 한국교회의 토착화 즉 독특한 한국교회의 현상이라고 밝히고 있다. 김명실은 “공동체적인 탄원기도로서 통성기도를 연구”하였는데, 특별히 통성이라는 단어를 분석하여 통성기도의 개념을 한국의 독특한 정서인 ‘한’에 기초하여 분석하고 있다. 그는 통성이라는 단어에서 성(聲)은 소리를 의미하고 통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고 밝히고 있다. 
 
 먼저 통(通)은 “공통의” 혹은 “공동 사회의” 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다른 하나의 통(痛)은 “아픈” “번민의”, “비애의,” 분개의,“ 혹 ”신랄한“ 의미를 지닌다. 어떤 중국 한자가 사용되느냐에 따라, 통성기도의 의미들이 달라지며 그것은 자연적으로 논쟁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나는 두 개의 글자의 의미들을 함께 가져오는 것이 두 개중 하나 만을 선택하여 사용하는 것보다 통성기도의 진정한 의미를 더 잘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개의 한자를 모두 함께 사용하게 될 경우 통성기도는 ”공동적인 혹 공동체적인 탄원 기도“ 의미가 된다. 
 
즉 김명실은 통성기도라는 그 단어 자체에는 ”크게 말하기“ 라는 의미라기 보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그들의 슬픔과 번민, 그리고 신랄함마저 그 믿음의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함께 나눈다는 의미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통성은 그저 소리를 내는 것이기 보다 고통을 함께 나누는 통곡의 소리 함께 하나님께 간청하는 부르짖음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한국의 독특한 한의 정서에 부르짖는 기도가 만나서 이루어진 기도 방식이라는 것이다.
    정리하면 통성기도는 한국인들 안에 있는 한의 정서를 가지고 하나님께 향하는 탄원적인 부르짖음이 변경된 형태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교회 내에서 통성기도는 어떻게 발전하였으며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 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3. 통성기도의 역사 ‘한의 정서를 중심으로’ 
 
1) 일제 강점기시대 통성기도 : 탄압과 박해속에서
    일반적으로 한국교회내에서 통성기도가 어떻게 시작하였는지 살펴보는 교회사가들이 주목하고 있는 사실은 통성기도가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 이후에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이 시작될 무렵 한국 교회는 민족의 자주독립을 수호하기 위해 애를 썼다. 이에 일제는 한국교회를 탄압을 위한 여러 방안을 만들어 대대적인 박해를 실시하였다. 결국 한국교회는 나라를 빼앗긴 비참함 속에서 하나님께 울부짖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물론 통성기도는 한국교회의 독창적인 기도의 방식은 아니다. 1700년대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가 중심이 된 제1차 대각성운동과 1900년대 영국 웨일즈 지방에서 일어난 대부흥운동에서도 함께 기도하는 통성기도의 예를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살펴본 대로 한국의 통성기도는 한국의 독특한 정서인 한 과 부르짖는 기도가 만나서 이루어진 토착된 기도라는 의미에서 한국교회의 독창적인 기도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통성기도는 1900년 초 일제의 탄압과 박해 그리고 극심한 가난과 삶의 고통속에서 개인의 탄원과 공동체의 탄원이 부르짖는 기도와 만나 이루어졌다. 1907년 대부흥운동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김인수 역시 1907년 부흥운동을 통해 새벽기도회와 한꺼번에 기도하는 통성기도가 정착되었다고 본다. 부흥운동의 목격자들의 기록에 의하면 통성기도는 이렇게 정착되었다. 
 
 간단한 설교가 끝나고 그레이엄 리(이길함, Graham Lee)선교사가 사회하면서 회중에게기도 하자고 하자 여러사람들이 한꺼번에 기도를 시작하므로 그가 "여러분이 다 이와 같이 기도하기를 원하면 다 같이 기도 합시다." 라고 말하니 온 회중이 일제히 소리를 내어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 정황은 실로 글로 적을 수 없는 정도였다. 아무런 혼란도 없었고 도리어 심령과 심령이 호응하는 화음이 서리었고 기도를 올리고 싶은 충격을 저항 할 수 없던 마음과 마음이 사귀는 심교였다. 기도소 리는 마치 폭포수 소리와 같아서 대해조가 하나님의 보좌로 밀려 올라가는 듯 하였다.

    옥성득은 당시 부흥운동의 주역이었던 길선주가 중심이 되어 선도에서 기독교로 토착화 한 새벽기도와 통성기도는 1910년 전후부터 한국교회의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정착하기 시작 했는데, 사적인 소원을 빌었던 도교의 기도와 비교하면 개신교의 기도는 민족적 위기에 교회와 민족공동체를 위한 공공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통성기도는 다분히 도교적인 것 이거나 무속적이면서 기복적인 신앙과의 연관성을 넘어 1900년대 초 각 지역의 부흥회(사경회) 이후에 신앙의 열기가 식지 않도록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기도의 형태였다는 것이다. 교회는 부흥회 후 신앙의 열기가 식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도가니와 같은 역할을 하였고, 하나님께 개인의 아픔과 공동체의 아픔을 토로하는 탄원의 기도를 드리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2) 한국전쟁시대 통성기도 : 교회와 기도원을 중심으로
    이후 1950년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수많은 전쟁의 난민들이 발생하였다.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아내와 남편과 자녀들을 잃었다. 이 시기에 한국교회는 난민들을 돌보며 그들을 보듬어 주는 사역들을 하였다. 이 시기 전쟁의 난민들은 교회로 모였다. 상실과 아픔, 전쟁의 두려움을 토로할 기도의 장소로서 기도원 운동이 여기저기에서 시작되었다. 성도들은 교회와 기도원과 같은 곳에서 함께 모여 통성으로 기도하였다. 이 시기에 나운몽의 용문산기도원, 박태성의 전도관 과 같은 이단 영성운동이 무분별하게 등장하여 한국교회를 어지럽혔다. 이러한 이단이 득세 한 것으로 봤을 때, 당시 교인들은 영적 갈망이 고조되어 기도원이나 교회의 부흥회를 찾아 다녔고, 통성기도를 통해서 고통과 아픔을 토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경제계발시대 통성기도 ‘주여 삼창’
    통성기도는 점차 1960-70년대에 이르러 오순절 교단의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중심으로 발전하게 된다. 통성기도의 내용과 방식도 달라진다. 소위 ‘주여 삼창’으로 시작하는 방식이다.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극심한 경제적 가난을 겪었다. 6-70년대 경제적 가난으로 인한 고통은 한국교회 교인들이라고 예외가 없었다. 이시기에 삶속에서 맺힌 개인적인 한과 고통을 주의 이름을 세 번 부르며 하나님앞에 울부짖고 토로하는 기도로 이어졌다. 소태영은 당시 순복음교회의 ‘주여 삼창’의 기도는 마치 절망적 상황에 놓여있는 탄식시의 기도자가 하나님을 바라보며 되친 외마디 절규와 같은 것이라고 분석한다.

    정리하면, 통성기도는 1900년 초 일제 강점기시대 탄압과 박해속에서, 1950년대 한국전쟁시대 전쟁 난민들의 희생의 상실과 아픔 전쟁의 불안과 고통 속에서, 60-70년대 경제계발시대  경제적 가난속에서 개인과 민족의 아픔과 한을 가지고 하나님앞에서 울부짖으며 기도했던 기도의 방식이다. 한국교회는 통성기도를 통해서 절망과 탄식 가운데 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희망과 소망을 갖게 되었으며 교회역사에 유례없는 놀라운 성장을 이뤄낸다. 그렇다면 통성기도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4. 통성기도의 방식 

1) 죄를 회개하는 정화의 기도. 
    1900년 초 평양의 대부흥시기에는 통성기도가 무엇보다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이길함(Graham Lee) 선교사는 1907년 1월 14일 월요일 저녁집회 후 5-600명이 남아서 새벽까지 죄를 자복하고 통곡하며 용서를 구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 후 사람들이 연이어 일어나서 ‘목사님 말해주세요 저도 용서를 받을 수 있는 희망이 있습니까?’ 바닥에 쓰러지며 울며 고통속에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온 청중이 통성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증언한다. 15일 저녁집회에는 길선주장로가 자신의 죄를 고백할 때 온 회중이 통회하며 참회하게 된다. 이러한 부흥의 물결이 지나고 1909년에 쓴 스왈렌 선교사의 글에 의하면, 길선주 장로와 박치록 장로가 매일 새벽기도회를 드리기로 하였다. 그리고 나흘째 회중이 갑자기 무관심과 냉담과 사역에 대한 사랑과 열정의 부족의 죄들을 고백하면서 울기 시작했다고 기록한다. 이렇게 통성기도는 죄를 향한 통회와 자복함으로 시작되었고, 성도들의 마음과 공동체가 정화 즉 깨끗하게 되고 새롭게 되었다.
 
2) 하나님을 지향하는 마음의 기도
    통성기도는 탄식기도이다. 성경에서 탄식시를 담은 시편들을 보면 시인이 맞이하는 고통과 절망속에서 하나님의 부재를 강하게 느낀다. 그것으로 인해 그는 하나님께 탄식하며 기도한다. 이때 탄식 기도의 방식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회복을 갈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고, 회복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다. 회복과 구원의 희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결단하고 고백하며 시는 마무리 된다. 탄식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탄식이며 희망이 담긴 기도이다. 통성기도는 시편에 쓰인 탄식의 기도와 흡사하다. 그렇다면 탄식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다. 조성호는 ”통성기도에 관한 실천신학적 연구“에서 통성기도는 소리의 유무 여부보다는 형식속에 담긴 기도자의 진지한 마음가짐 그리고 삶의 무게 중심에 기도에 올바로 담기는지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김명실 역시 통성기도란 단순히 소리를 내어 기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픔과 고통을 그 구성원이 함께 하나님께 가지고 나오는 것임을 밝힌다. 통성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강한 영적 채널이다. 그러므로 통성기도는 탄식 가운데 하나님을 지향하는 마음의 기도라고 볼 수 있다.    

3)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
   통성기도의 특징 중 하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른바 ‘주여삼창’ 즉 신을 부르는 돈호법(頓呼法)의 사용이다. 이와 관련하여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영산신학저널의 연구가 활발하다. 소태영은 주여 삼창은 순복음교회의 독특한 기도양식이며 성도들의 슬픔, 아픔, 고통, 불안, 절망의 처절한 탄식으로 비롯되었으며 하나님의 부재라는 절대 절망을 하나님의 임재의 희망으로 변환하는 변주곡 이라는 것을 밝힌다. 조용기는 2005년 12월 11일 주일예배 설교에서 주를 부르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밝힌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를 부르는 순간 인간은 죄인의 자화상에서 자녀의 자화상으로 병약한 자화상에서 건강한 자화상으로, 가난한 자화상에서 축복의 자화상으로 변화된다.
 
    ‘주여 삼창’은 주님을 부르는 순간, 하나님의 현존을 깊이 느끼는 기도이다. 우리가 주님을 부른 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인 우리의 구주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받아주시며 축복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여를 세 번 외치며 기도자들은 불완전하고 절망가운데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게 되고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게 되며 도움을 구하게 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타락 이전의 상태 그 본래의 상태로의 회복(변화)을 갈망하게 만드는 것이다. 
 

Ⅳ. 예수기도와 통성기도 비교.

1. 차이점과 비슷한 점
    지금까지 본 연구는 동방정교회의 예수기도와 한국교회의 통성기도를 각각 살펴보았다. 물론 예수기도는 이미 광야의 수도사들로부터 시작된 오랜 전통의 기도이며 통성기도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한국정서에 토착된 기도라는 것을 충분히 살펴보았다. 시간적이며 연대기적인 차이, 고대의 동방정교회와 현대 한국교회라는 문화와 상황적인 부분까지 충분히 고려해야겠지만, 오늘날 예수기도는 사막의 교부들의 수도생활에 국한되지 않고 대중화되어 일반 성도들까지 널리 알려지고 있다. 그런의미에서 오늘날 예수기도와 통성기도를 비교한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본 연구는 예수기도와 통성기도의 차이점과 비교점을 살펴볼 것이며 이를 통해 영성을 추구함에 있어서 기도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정리할 것이다. 예수기도와 통성기도를 통합한 기도모델을 결론으로 소개하고 마치고자 한다.
 
1) 소리의 유무 : 정화의 기도
     예수기도는 침묵으로 하는 기도의 형태이다. 그러나 통성기도는 발성기도이다. 물론 두 기도는 소리의 유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수기도는 짧은 단문으로 하는 기도이기에 수도자가 작은 소리로 읊조리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통성기도는 발성으로 기도하는 것이 기본적이지만, 소리보다는 마음의 애씀, 간절함이 더 중요한 기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기도는 침묵을 유지하며 마음에 중심을 두고하는 기도이며, 통성기도는 발성을 하되 소리의 크기 보다는 마음의 간절함에 중심을 두고 하는 기도이다.
     두 기도 모두 소리의 유무의 형식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중요한 것은 마음의 애씀에 있다. 예수 기도는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본능적인 것과 정서적인 불안과 어두움을 예수를 부르고 구원을 갈망함으로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한다면, 통성기도는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억울함과 고통, 한 맺힌 것들을 부르짖으며 정화시키고 풀어지고 회복되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2) 기도문의 형식 : 갈망하는 기도
     예수기도는 짧은 단문의 기도의 형식을 갖춘 기도이다. 그러나 통성기도는 정형화된 기도문을 갖추지 않는다. 즉 예수 기도의 경우 ‘다윗의 자손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여 오소서, 나를 구원하소서’ 등의 짧은 단문의 기도형식을 갖춘다. 예수를 부르고(돈호), 자비를 구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통성기도는 정형화된 틀이 없다. 형식으로부터 매이지 않고 자유롭다. 더 나아가 소위 일반적인 언어보다는 방언기도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통성기도는 기도문의 어떤 형식에 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께 개방적이고 은혜에 대한 갈망이 증폭됨을 기도자는 깊이 느낀다. 하지만 예수기도도 이 부분에 있어서 짧은 단문이라는 형식을 갖추지만, 수도사가 경우에 따라서 예수기도를 단문을 만들어 다른 형식으로 자유롭게 선택하여 기도할 수 있다. 단 기도문을 자주 바꾸는 것은 옳지 않다. 일정시간을 같은 문장으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에 있어서 형식은 중요하다. 기도에 형식이 중요한 것은 기도의 습관을 바로 잡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기도가 가진 자유롭지만 매어있는 형식으로 그러나 통성기도와 같이 형식에 매어있지 않는 깊은 차원의 기도로 나아가야할 것이다.   
 
3) 기도자의 자세 : 마음의 기도
     기도자의 자세는 기도의 갈망을 일으키는 데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깨닫게 만들어준다. 기도자는 기도에 들어가기 전에 자세를 바르게 잡는 것이 중요하다. 일찍이 동방정교회의 수도사들 역시 기도의 자세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예수기도는 자세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기도의 습관을 가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단문의 기도문을 침묵으로 기도하고 호흡을 담아서 심장(마음)에 내려가도록 기도하였다. 그래서 예수기도는 마음의 기도라고 하였다. 기도자는 간혹 가장 낮은 위치에서, 때로는 몸을 웅크리고, 경우에 따라 손을 들며 간절하게 기도하였다. 그러나 통성기도는 소리를 내는 발성기도이기 때문에 간절함이 중요하여, 회중이 모인 곳에서 찬양으로 시작하거나 ‘주여 삼창’으로 시작하였다. 대체로 기도 인도자가 함께 공동의 기도 제목을 주고 기도하는 공동체적 기도이다. 그래서 기도의 자세는 중요하지 않고 손을 들고, 혹은 몸을 흔들며, 무릎을 꿇으며 등등 간절함을 증가 시키기 위한 자유로운 방식으로 기도했다.
     기도에 있어서 자세는 중요하다. 예수기도는 개인 기도의 특성이 강해 기도의 자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통성기도는 공동체적 기도의 특성이 강해 다소 자유롭다. 하지만 두 기도 모두 중요한 것은 기도자의 자세는 기도의 갈망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Ⅴ. 결론 : 예수기도와 통성기도를 통합한 기도 모델 
 
     조성호는 기도에 있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실존적인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실체로 이해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한다. 더불어 언어의 유무가 기도의 가치를 구분하는 핵심 가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밝힌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아픔과 고통, 분열과 다툼속에서 소리와 언어의 유무가 아니라 마음의 간절함과 탄식을 가지고 기도해 왔다. 방식이 어떠하든 간에 그리고 어떤 결과가 되었든지, 한국교회는 신앙공동체로서 아픔과 상처를 기도로 정화하고 승화하여 성장하였고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그래서 본 연구자는 예수기도의 침묵과 자세, 통성기도의 발성과 자세를 통합하여 한국교회에 기도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 
 
1) 통성기도에서 예수기도로 : 능동에서, 수동으로
     이미 살펴보았지만, 통성기도는 발성기도 이다. 소리를 내기 때문에 능동적인 기도이다. 더불어 통성기도는 그 특성상 예배나 집회에서 이루어진다. 통성기도는 형식과 방식에 있어서도 자유롭기 때문에 개인적인 기도 보다는 공동체적 기도에 적합하다. 그렇다보니 기도중에 개인 성찰 그리고 듣는것에 취약한 부분이 있다. 반대로 예수기도의 방식인 침묵기도는 수동적인 기도이다. 개인기도에 적합하고 개인의 고독이 좋은 기도의 도구가 된다. 듣는 기도이며 하나님과 관계가 중요한 기도이다. 유해룡은 이에 관하여 ”기도의 출발자가 기도자라고 한다면, 기도는 능동적인 행위이어야 한다. 반면에 기도의 출발자가 성령 하나님이시라면, 기도는 수동적인 행위이어야 한다.“ 즉 기도자는 아픔과 상처, 두려움과 불안함을 가지고 기도의 자리로 들어온다. 그것을 벗어나고자 하는 동기로 기도를 시작한다. 그런의미에서 기도자가 의지적이고 능동적으로 시작할 때 기도는 능동적인 것이 된다. 그렇게 시작된 기도는 점차 하나님의 깊은 사귐과 관계의 문제로 나아간다.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하고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로 나아간다. 이때 기도자는 수동적 응답자가 되는 것이다. 기도에 있어서 이러한 능동성과 수동성을 적절하게 구사하며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본 연구자는 먼저 통성기도로 시작하여 침묵으로 나아가는 기도의 방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주여삼창’으로 충분히 소리내어 예수를 부른다. 통성으로 쭈욱 기도하다 보면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뜨거운 마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경험한다. 그 후에 통성기도를 멈추고 완전한 침묵가운데 나아간다. 이때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 심장의 박동소리에 마음의 귀를 기울이고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이때 예수기도를 충분히 호흡과 함께 또는 심장 박동소리에 맞추어 반복하여 기도한다. 마지막으로 10~20여분이 지나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로 마무리 한다. 
 
2) 예수기도에서 통성기도로 : 분심과 집중사이에서
     최용운은 토마스 머튼의 영성 신학적 입장에서 한국 개신교의 기도 문화에 대해서 연구하였다. 연구의 결론 부분에 이르러 토마스 머튼의 침묵기도와 한국교회 통성기도의 두 기도의 방식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자세에서 비롯된 형태적 차이는 있을지언정 맥락을 공유한다고 한다. 즉 형태적 차이도 있지만 근본적인 부분에서 공유할 수 있는 것이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성기도는 성도들의 기도소리와 소음이 깊이있는 기도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방해요소가 된다. 게다가 소리가 고조되면서 때로는 알아듣기 힘든 방언기도와 같은 방식이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어렵게 한다. 그래서 침묵기도로 통성기도를 보완하는 방식을 소개하려고 한다. 위에서 주여 삼창을 동반한 통성기도의 능동적 방식에서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침묵기도의 수동형으로 나아가는 방식을 소개했다면, 반대로 예수기도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통성기도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기도자는 편하게 자세를 잡는다. 수도사들이 제안한 방식을 고려해도 좋다. 편안한 방식으로 앉아서 기도에 들어가 호흡과 함께 ‘예수기도’를 한다. 10-20분간 예수기도를 드리다보면, 잠시간 졸음과 동시에 분심과 같은 것이 찾아올 것이다. 이때 기도자는 잠시 자세를 바꾸어 본인의 귀에 들릴 수 있을 정도의 소리로 ‘주여 삼창’을 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내용의 기도를 반복적으로 드리도록 한다. 그렇게 마음이 뜨거워지거나 정신이 집중이 되면 다시 침묵기도로 돌아와도 좋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로 마무리하고 기도를 마쳐도 좋다. 
     이상 통성기도와 예수기도를 연구로 마치지 않고 두 기도를 통합 하는 방식을 소개하였다. 이미 밝힌대로 기도는 종교의 언어이며 정체성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통성기도와 기도 생활에 대한 연구가 미비한 상황임을 본다. 동방정교회의 예수기도 역시 현대인들에게 대중화를 위한 움직임에 들어간 만큼 한국적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는 기도의 방식에 대한 다양한 영성 연구들이 나와주길 바란다.    
 
 
 
 
 
 
 
 
 
 
---참고문헌---
 
단행본
 
김인수. 『한국 기독교회의 역사 상권』,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4. 
옥성득. 『다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6. 
함신주. 『바울과 함께 걸었네』, 서울: 아르카출판사, 2019.
허호익. 『길선주목사의 목회와 신학사상』,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9.
이에로테오스. “The Jesus prayer” 조성암역. 『예수기도』 서울: 정교회출판사, 2018.
John Meyendorff. 그레고리오스 박노양 옮김. 『비잔틴신학: 역사적 변천과 주요교리』. 서울:정교회출판사, 2013. 
Hennri J. Nouwen. “The only necessary thing: Living a Prayful Life.” 박종현역. 『기도의 삶』 서울:두란노, 2001.
Henri Pierre Rinckel. 허성석역 『마음의 기도』,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3.
 
 
연구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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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천. “동방정교회 영성의 고전 『필로칼리아-The Philokalia』에 나타난 무정념(apatheia)에 이르는 길.” 「신학과 실천」 1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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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영. “주여 삼창의 순복음 교회 기도양식에 내재된 탄식의 영성과 교육.”  「영산신학저널」 40(2017).
안석모. “생체리듬으로 하는 기도 이론과 실제.” 『목회와 상담』 제10호.
유해룡. "동방정교회의 관상적 전통과 예수의 기도." 『장신논단』 22(2004).
조성호. “통성기도에 관한 실천신학적 연구.” 「신학과 실천」 72(2020).
채혁수. "예수기도의 영성교육적 적용에 관한 연구." 『기독교교육정보』 51.
최용운. “토마스 머튼의 영성 신학적 입장에서 조명한 한국 개신교의 기도 문화에 관한 연구.” 「신학과 실천」 59(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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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들. 
 
 유해룡. “기도는 사귐이다.” 한국기독공보 2022.05.30. 일자.
 조용기.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주일예배설교, 2005.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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