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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3

한규무, 국가조찬기도회 무엇을 남겼는가를 읽고서 논문을 위한 정리 개념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일단 전체적인 논문의 개인적인 평가이기 때문에 논문을 쓴 저자의 의도와 다를수 있다. 즉 논문의 필요를 위해 그리고 시각을 넓히기 위한 연습이라고 보면 좋을듯하다. 유신시기와 신군부시대 속에 보수와 진보는 각각 다른길을 걷기 시작했다. 진보 개신교회는 민주화 운동과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하였고, 보수 개신교회는 정교분리 원칙을 위한 정권유착적 형태의 모습의 양갈래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특별히 보수교회가 가진 몇가지 대 사회적인 입장에서 나타난 몇가지 두드러진 활동이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국가조찬기도회가 아닌가 생각된다. 본 글은 한규무교수의 글로서 기독교사상 2004년 1월호에 기재된 [특집우리_시대__교회의_정치적_책임은_무엇인가]__'국가조찬기도회_'.. 2014. 3. 28.
한국교회사 속에 나타난 진보와 보수 -그 새로운 만남을 위하여 를 읽고 이 글은 이덕주 교수의 기독교사상 2002년 1월호에 특집호로 개재된 논문이다. 이 논문은 진보와 보수가 한국교회 내에서 어떤 개념인지 어떤 형태로 존재해 왔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이들안에 화해의 노력은 무엇인지를 교회사적으로 정리해 주고 있다. 본 논문을 정리하면 1. 먼저 본 논문은 무엇이 진보이고 보수인지를 묻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글의 저자는 진보와 보수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에 개념정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신학사상사적으로 보수주의란 종종 '정통주의', '근본주의' 혹은 '복음주의'등과 혼용되고 있으며 진보주의는 '자유주의'로 확대해석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의 용어를 적용할때면 좀 복잡한 현상이 일어나는데, 예를 들어 1960년대 장로교 전통안에서도 예장 통합이 .. 2014. 3. 27.
초기 한국기독교의 정교분리 문제 (1901년 정교분리선언) 한국의 민주화 운동시기에 나타난 개신교의 모습을 다루기 위해서는 초기의 한국 개신교의 정교 분리 문제를 정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연히 한국 기독교 역사연구소 소식 79호에 실린 김권정교수(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겸임 교수)의 글을 읽어보았다. 그는 초기 한국기독교의 '정교분리'문제와 사회참여 -한국기독교의 사회참여 방식을 중심으로....라는 글을 통해 당시 한국교회의 정교분리의 배경이라 여기는 1901년 장로교 공의회의 '정교 분리 선언'을 역사적 콘텍스트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사회참여 방식은 어땠는지를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1901년 장로교 공의회 '정교분리선언' 1901년 4월28일 북장로회 외국 선교위원회 총무인 브라운 총무가 다녀간 그해 9월에 장로교공의회가 열렸는데, "교회와 .. 2014.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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