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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대 (삶)/책과 삶

엔도 수사쿠의 침묵을 읽고.....공문혜옮김. 홍성사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09.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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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http://hongsungsa.com

교회력과 설교 수업을 듣는 중에 주승중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 책이다.

신학생으로써 아직도 엔도수사쿠[각주:1]의 침묵을 읽어보지 않았으면
회개해야한다고 하시며 꼭 읽어볼것을 추천하셨다.

그래서 당장 수업이 끝나자 마자 학교 구내서점에 가서 찾아보았지만,
학교에는 없었다. 어쩔수 없이 교회에 기독교서점을 하셨던 청년분께 부탁해서
이책을 획득? 했고, 정말 단숨에 쉬지 않고 읽어보았다.
정말 한시도 이책에서 눈을 뗄수 없게 만들었다.  

당시 신대원 입학후에 늘 고민했던것은 하나님앞에서 순교자의 삶을 사는 것에
대한 부분이었다. 채플때 마다 교수님의 강의 때마다
목회자와 신학생으로써 우리의 죽음에 대해서 강조하셨기 때문이다
이 책은 순교와 일본의 기독교 박해의 역사에 대한 책이다, 
당시 그런 분위기에서 이책을 읽는 다는 것만큼 거부감이 들고 부담감이 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책을 읽음과 동시에 지금까지 순교와 박해에 대한 내생각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편협한 것이었는가
 끝없는 생각과 고민으로 하루하루를 보낼수 있었다.

때는 17세기 초엽의 일본. 조선 침략으로도 유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종래의 정책을 바꿔 가톨릭을 박해하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된 일련의 순교사화(殉敎史禍)들 중, 포르투갈의 예수회가 일본의 나가사끼(長崎)에 파견하고 있었던 한 선교사의 배교(背敎) 사건을 다루면서 소설은 시작된다[각주:2]

이책은 읽는 내내 했던 질문은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 였다.
이소설에서 배교자로 등장하는 페레이라 신부 그는 많은 신부들과 가톨릭안에서 굉장히 존경받는 선교사
였다. 그런 그가 구멍매달기라는 고문끝에 그는 배교하게 되고 이것은 당시의 선교사들에게 큰 충격이 된다.

이런 배교의 상황가운데에도 일본안에는 여전히 그들의 신앙을 굳게 지키며
성직자들을 기다리는 백성들이 있었고, 그들을 만나고 성례를 베풀기 위해 죽음도 마다않고 그들을 향해서
선교를 떠난 주인공' 세바스티앙 로드리고는 언제 덮칠지 모르는 일본 당국의 위협속에서 신앙에 갈증하는
일본인들을 찾아 간다.

그리고 수많은 배교와 위협속에서 매일 숨죽이며 매일매일 그렇게 살다가 
이들에게 찾아오는 비보(悲報). 자신들을 도왔던 모찌기와 이찌소우라고 불리우는 그리스도인들이 결국은 당국에 체포되어 곧 처형될 것이라는 소식…. 결국 이들은 바닷가 모래사장에 조수가 밀려 간 뒤 나무에 묶여 매달렸다가 다시금 바닷물이 들어 옴으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악랄한 방법의 처형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때도 하나님은 바다위에서 완고하게 계속 침묵하고 있었다.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 갑자기 이소리가 납 빛 바다의 기억과 함께 신부의 가슴을 후벼파기 시작했다....이소리는 거의 어두워진 하늘을 향해 십자가 위헤서 올려졌지만, 신부는 그것을 오랫동안 그분이 기도하는 말이라고만 생각하였을뿐 경코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공포에서 나온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 하나님이 없다는 수없이 바다를 횡단하여 이작은 불모의 땅에 한알의 씨를 가져온 자신의 반생은 얼마나 우스꽝스럽단 말인가 그것은 정녕 희극에 지나지 않을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매미가 울고 있는 한 낮 목이 잘린 애꾸눈 사나이의 인생은 우스꽝스럽다. 헤엄치며 신도들의  작은 배를 쫓는 가르페의 인생도 우스꽝스럽다.신부는 벽을 향하고 앉아 소리를 내어 웃었다. p215


솔직히 나의 삶속에서 이런 고민을 많이 한다. 왜...하나님은 이렇게 내인생에서 중요한 시간에 침묵 하실까...
하나님은 과연 존재하실까?
예수님의 절규와 하나님의 침묵을 통해서 나는 침묵은 또하나의 하나님의 대답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십자가를 향한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의 확증이리라...  
그러한 의미로써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부하나님은 함께 고난을 당하고 계신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침묵이 아닐까...

 
 얼마전 읽은 이사야 45:15절말씀이 생각난다.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왜 하나님은 숨어계실까? 누군가 그랬다. 우리의 인생에 관한 모든 이해되지 않는 문제는 결국 우리의 죽음이후에 하나님 면전에 나아가 물어봐야할 것들이라고 말이다. 
이러한 깊은 부르짖음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하게 한다.

다시 소설의 내용으로 돌아와
결국 로드리고 신부 역시 신뢰했던 기치지로의 배교에 의해 잡히게 된다. 그리고 악명높은 고문인 구멍매달기를 고안해 낸이노우에를 만나게 되고 배교자 페레이라를 만나게된다.
소설의 최고의 절정은 페레이라와의 만남이 아닐까 생각된다.
감옥안에서도 끝까지 완고하게 그의 신앙을 지키는 로드리고 신부에게 배교에 대한 강요는 극에 달하게 되고 결국 페레이라를 만나게 된것이다.

로드리고 신부는 차가운 감옥안에서 베드로의 배교를 떠올리며 절때 배교하지 않겠노라고 하며 완고하게 그의 신앙을 지키고자한다. 그러나 새벽에 들리는 코고는 것 같은 소리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그 코고는 것 같은 소리때문에 잠에 쉽게 들지 못한다. 그러나 그 소리는 구멍매달기 고문을 받고 있는 신도들의 소리였다. 그리고 당신이 배교하면 그들을 풀어주겠노라고 유혹하기에 이른다.

페레이라의 말이 이 소설을 읽는 마치 내가 로드리고가 되어있는 양 내 마음에 갈등을 주었다.
"나도 그랬었지 저 캄캄하고 차디찬 밤 나도 지금의 자네와 마찬가지였어, 하지만 그것이 사랑의 행위란 말인가? 신부인 나는 그리스도를 배우면서 살아가라고 가르쳤어 그러나 만약 그리스도께서 여기에 계신다면.....
확실히 그리스도는 그들을 위해 배교했을거야......"


정말 만약에 그리스도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그분은 어떻게 하셨을까...
"그리스도는 배교 했을거네..사랑때문에..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결국 로드리고는 배교의 행위로 간주되는 예수의 성화를 밟고 지나가는 상황에 서있게 된다.

그는 발앞에 있는 예수의 성화앞에 선다 그리고 그 성화를 바라본다.
잔잔한 파도처럼 나무결이 무늬지어 있는 약간 더러워지고 회색으로 된 나무 판자에 조잡한 구리로 새긴 그리스도의 모습이 끼워있었다....그것은 가느다란 팔을 벌리고 가시관을 쓴 보기 흉한 얼굴이었다....
 
신부는 양쪽 손으로 성화를 들어올려 얼굴에 가까이 가져갔다...그리고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신부는 발을 든다.

동판에 세겨진 그분은 신분에게 말했다.

밟아도 좋다.....네발이 아픔을 내가 제일 잘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부가 성황에 발을 올려 놓았을때 아침이 왔다.
(마치 베드로를 연상하게 하듯...소설은 끝이난다.) 멀리서 닭이 울었다...p267

로드리고는 이렇게 배교하게 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좀 마음이 무거웠다. 속도 상했다. 그가 순교했다면...어쨌을까?
신도들을 살리기 위한 그의 배교와 내가 지금 믿고 기다리는 하나님나라와는 무엇이 다르며
무엇이 같을까?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도 역시 주님을 위해 이곳에 왔고 목숨걸 각오가 되어있다. 내가 만약 로드리고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한장을 넘겨 로드리고의 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배교했습니다. 그러나 주여, 제가 결코 배교한 것이 아님을 당신은 아십니다.
어째서 배교했냐고 성직자들은 나를 심문할 것입니다. 구멍 매달기 고문이 두려웠던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저 구멍 매달기 고문을 받고 있는 농민들의 신음소리를 참을 수 없었던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페레이라가 유혹한 것처럼 자기가 배교하면 저 가련한 농민들이 구원받는다고 생각한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자칫, 그 사랑의 행위를 구실로 자신의 나약함을 정당화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 모두를 나는 인정합니다. 이미 나의 모든 약점을 숨기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나는 성직자들이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과 나의 주님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p273"

그가 밟은 성화속의 그리스도의 모습은 포르투갈이나 로마 고아나 마카오에서 수없이 보아온 그리스도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그것은 자랑스러움을 지닌 그리스도의 얼굴은 아니었다.
아름답고 고통스러움을 견디는 얼굴도 아니었다. 그의 발앞에 있는 그분의 얼굴은 여위고 지나치게 지쳐있었다.
"밟아도 좋다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나는 존재한다'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보기좋게 뚱뚱하고 살진 예수님의 모습? 야윈모습....? 지쳐있는 모습?.....
 그리고 여전히 하나님의 침묵속에서 부르짖는 성도들의 탄식과 부르짖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부르짖음...
왜 하나님은 침묵하셨을까?...
우리의 고통속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우리의 신앙의 모든 문제를 누가 그렇게 쉽게 이야기할수 있을까? 
그저 물음으로 마칠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침묵앞에서 우리도 침묵할수 밖에 없지 않은가...

침묵(보급판)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엔도 슈사쿠 (홍성사, 2005년)
상세보기


이책을 추천한다.
교수님말씀대로 신학생이라면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과연 하나님의 침묵에 관해서 고민해 보지 않고 신앙의 문제에 대해서 강단에 서서
무엇을 말할수 있을까? 고민해본다.
무엇보다도 모든 신앙의 문제는 하나님의 침묵앞에서 우리 역시도 침묵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어떠한 부당한 문제라 할지라도 말이다...






  1. 엔도 슈사쿠 일본의 대표적 현대 소설가. 1923년 도쿄 출생. 가톨릭 신자인 이모의 영향으로 어머니가 그리스도인이 된 뒤, 엔도도 어머니와 이모의 권유로 열한 살 때 세례를 받았다. 1949년에 게이오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정부가 수여하는 장학금으로 프랑스 리옹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1955년 발표한 《백인》(白ぃ人)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고 《바다와 독약》(海と毒藥)으로 일본 문학가로서 자리를 굳혔다.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으며, 종교소설과 세속소설의 차이를 무너뜨린 20세기 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1996년 사망. 대표작 《침묵》(沈默)은 그에게 다니자키 상을 안겨 준 작품으로서 오랫동안 신학적 주제가 되어 온 \"하나님은 고통의 순간에 어디 계신가?\"라는 문제를 17세기 일본의 기독교 박해 상황을 토대로 진지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그려 냈다. 신앙을 부인해야만 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고민하는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치밀하다는 평을 듣고 있으며, 영어·독일어·프랑스어 등 세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홍성사 '침묵- 저자소개' 에서 발췌 ) [본문으로]
  2. .( 글/이상훈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한국기독공보 제2325호(2001.6.30) 자료출처-http://hongsungsa.com에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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