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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대 (삶)/책과 삶

존 플라벨(John Flavel )의 섭리의 신비(The mystery of Providence)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7.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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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청교도 존 플라벨(John Flavel )의 "섭리의 신비(경기,파주: 크리스챤다이제스트,2017)"를 읽고 있다.

섭리(攝理)라는 단어는 전적으로 종교적인 단어이다.

섭리의 사전적의미는 자연계 지배하고 있는 원리 법칙/ 세상 우주 만물 다스리는 하나님 뜻.

그런데 기적이나 초월적 형이상학체계보다 과학과 합리적 이성체계를 그 우위로 정하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섭리라는 단어는 우스갯소리같이 느껴지고 있다. 

 

섭리 즉 하나님의 뜻은 대게 인간을 수동적 존재이며 운명적 존재로 오해하게 한다. 

하나님의 뜻이 정해져 있고 규정되어서 그렇게 살아가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하기 떄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 즉 섭리는 그런 삶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신다. 

섭리는 하나님의 주권이다. 하나님의 통치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안에서 사는 삶이 얼마나 멋지고 귀한 삶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삶안에 있다는 것이 은혜로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깊이 묵상하게 된다.

 

섭리는 우선적으로 우리가 하나님 밖에 있는 자들이며 멸망당할 백성이라는 사실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는 자들이며,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사실을 더 깊이 깨닫게 한다.

다시말해서 섭리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며, 하나님안에 있는 자들이 은혜로서

더욱 하나님을 찬미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가도록 원동력을 부여하는 원리이다.

 

 존 플라벨(John Flavel )의 "섭리의 신비(The mystery of Providence)"를 꺼내 읽었다. 

이책은 시편 57:2절에 대한 강해집으로서 존 플라벨(John Flavel)의 섭리에 대한 역사적 이면서 교리적 내용들을 체계적으로 전달함과 동시에

품격있고 잔잔한 주옥같은 글들로 가득하다. 

특별히 저자 역시 섭리는 하나님께서 작정하는 것을 집행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섭리의 대상은 우선적으로 은혜의 지배아래에 있는 자들이며 그들이 하나님의 뜻안에서 사는 기쁨과 감사

은혜에 집중하기를 바라고 있다.  

 

먼저 저자는 섭리는 믿음의 든든한 지지대의 역할을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존자 이신 하나님은 "수단"에 구애받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믿음의 든든한 지지대입니다. 은혜는 약속을 만들고 섭리는 그 약속을 이룹니다. 섭리가 하는 일들은 하나님이 작정하신 일들을 집행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섭리속에는 그런 것 외에 다른 것은 있을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들과 약속들 속에는 성도들에게 유익하지 않은 것은 조금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믿음의 지지대 역할을 하므로 섭리는 성도들에게 유익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우리를 이끄는 목자이시다.

그리스도인은 그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인데, 섭리는 더나아가 우리가 따르는 그 하나님은 선하신 목자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한다.

선하신 목자를 따르는 것에는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은 것이 조금도 들어있지 않다. 그리고 그 믿음의 확고함 속에 나아간다.

이어서 저자는 다윗의 상황속으로 우리를 몰고 간다. 그러면서 저자는 아주 중요한 섭리의 신비를 맛보는 원리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둘째 저자는 섭리는 우리의 형편속에서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을 기억해 내는 것이라고 한다.  

아주 강력한 불구대천의 원수가 분노가 치솟아서 다윗을 바위 구멍속으로 몰아넣은후 그 구멍속에 있던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런 와중에서 다윗은 지금 사자들에 둘러싸인 채로 바위 동굴 틈새에 누워서 시시각각 엄습해 오는 죽음을 기다리며 처음부터 그 순간까지오로지 지존자가 베푸실 은혜를 묵상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영혼은 지탱하면서 기도에 소망과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습니다.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우리가 일생동안 수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내리게 되는 결론은 다음과 같은 가르침입니다. "특히 곤경에 처해 있을때에 성도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는 자신들의 삶의 무든 단계들과 형편속에서 그들을 위하여 섭리가 행한일들을 기억해 내는 것이다."

다윗은 지존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해 내고 있다. 지존자가 베푸실 은혜를 묵상하는 것으로서 그는 소망과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기억해내는 것은 섭리의 신비중하나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냄으로 현재적 삶에서 소망을 잃지 않도록 한다. 그런의미에서 볼때 예배(기도, 찬양, 말씀)는 기억해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두려움의 현실속에서,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같은 현재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되돌아 봄으로 우리는 현재를 하나님나라로 살아간다.

섭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감사하는 것이다.

 

셋째 저자는 섭리는 우리로 하나님께로 나아가 온전하게 한다고 합니다. 

저자는 섭리의 관심은 오직 죽어있던 죄에 대한 자각과 관심을 되살리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죄에 대해서 경계를 늦추지 않게하며

그것을 적극적으로 미워하도록 한다.

섭리는 사람들의 현재의 상태에 꼭 맞는 성경 본문을 주셔서 그들의 영혼을 깨우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새로운 죄에 빠지게 해서 그들이 이전에 죄로 말미암아 겪어서 온갖 괴로움을 겪었던 일을 상기시켜 줌으로써 그들의 양심이 새롭게 되살아 나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섭리가 죄인들로 하여금 죄에 대해서 자각하고 죄를 미워하게 할뿐아니라 영적 괴로움으로 인해 낙심에 빠지고

절망에 빠질때 우리의 영혼을 떠받쳐주고 위로해 줌으로서 믿음으로 살도록 돕는다고 말한다.

 

정리하면, 섭리는 성도들의 든든한 믿음의 지지대 역할을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기억해 내도록하며,

마지막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가 온전하게 한다.

가만히 보면 하나님의 섭리는 지금 당장 알기는 어렵다. 우리의 시각을 하나님의 은혜에 초점을 맞출때 가능하다. 그리고 때때로 예배의

순간속에서 섭리를 발견한다. 그러니 섭리는 더없이 우리가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섭리는 인간이 생각하는 합리적 이며 과학적인 어떤 체계와는 분명다른 것이다.

이것은 원초적이면서도 근본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이다.

그렇다고 극단적인 신비주의자들이 말하는 그런것들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초월적으로 역사하시는 은혜의 손길을 바라보는 것이지만,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하에서 나타나는 것이며

어느누구보다도 질서정연하시며 완전하시며 합리적인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도 이해할필요가 있다.

저자도 이런 점을 분명하게 하고있다.

그런 경우들에 있어서 섭리들을 사용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그 섭리들을 그자체로만 따로 떼어서 생각하지 않고 "말씀"의 명령들이나 약속들에 비추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뚜렷하고 두드러진 섭리의 나타남들이 있다고 해도 성경의 잣대와 어긋나는 것들인 경우에는 그런 것들을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그 섭리들이 아무리 좋아보이고 여러분을 성공으로 이끌고 있다고 해도 여러분은 자신이 마땅히 해야할 것들을 버리고 그 섭리들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서 그길로 나아가서는 안됩니다....

즉 합리적 근거들을 가지고 섭리를 분별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합리적 근거란 곧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지난 날 우리에게 허락된 은혜의 역사들을 되집어보고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발견하며 깨닫게 되어

더욱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간다. 예배드리면서 찬양하며 말이다. 

이것이 바로 섭리의 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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